by이진철 기자
2012.11.21 14:44:11
[이데일리 이진철 기자] 글로벌 경제위기의 증폭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선제대응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기업들은 올들어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상시 위기관리시스템을 가동하는 등 위기대응에 총력을 쏟고 있다.
잘 나가는 현대·기아차조차 지난 4월 삼일회계법인 소속의 컨설팅 그룹인 삼일PWC컨설팅으로부터 조직 전반에 대한 외부 경영진단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현대·기아차는 이번 컨설팅에서 위기상황이 닥칠 경우 조직 정비와 인사, 대응 방향 등과 관련해 한달 이상의 밀도 높은 경영 진단을 진행했다. 경영진단을 통해 마련한 매뉴얼로 특정 위기관련 이슈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005380)그룹 회장은 올 상반기 유럽발 재정위기가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한달 먼저 해외법인장 회의를 소집해 선제대응을 지시했고, 최근 미국 연비 과장표시 사태에 대해서도 소비자 보상 등 빨빠른 대응에 나섰다.
삼성도 위기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현재 대부분 계열사 임원들은 늦어도 오전 6시30분까지는 출근하고 있다. 지난 6월 최지성 부회장이 삼성 미래전략실장이 된 후 퍼진 조치다. 그만큼 삼성 임원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크다.
최근 주요 계열사에 대한 경영진단과 감사 등을 통해 조직에 대한 긴장감도 불어넣고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 2002년 이후 10년 만에 외부 컨설팅업체로부터 경영진단을 받았다. 저금리와 경기침체에 따른 수익 저하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분사한지 채 1년도 안 된 삼성디스플레이도 최근 감사를 실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위기 탓에 조직내부를 다잡기 위한 방안이라는 분석이 많다.
권오현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은 지난달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임원 세미나에서 “내년도 글로벌 경기 전망이 좋지 않고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위기에 선제대응하고 경쟁력있는 제품을 만들어 내라”고 주문했다.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도 “글로벌 시장의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할 것에 대비해 경영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는 구본무 회장이 직접 나서 위기대응을 독려하고 있다. “어려울 때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면서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더 분발할 것을 촉구했다. 다만 불황의 여파가 그리 녹록지 않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계열사들은 다소 보수적인 관점에서 내년 계획을 짜는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005490)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철강 시황 악화로 인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상시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포스코는 경기 변동에 맞춘 4단계 시나리오 경영으로 위기에 선제 대응하고 있으며, 최근 본격적인 감산 등이 이뤄지는 4단계 직전인 3단계로 비상경영 수위를 높였다.
포스코 관계자는 “지금은 불확실·불안정·불연속의 ‘3불 시대’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난해 말부터 비상경영에 돌입했다”며 “기존에는 판매량을 늘리는 데 집중했지만 이제는 고부가가치 제품중심으로 수익성을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SK그룹은 글로벌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해 실행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발 빠르게 맞춤식 대응을 하는 것이다. 지난 7월 부회장단 산하에 글로벌성장위원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인재육성위원회 등 3개의 위원회를 만들어 위기대응 활동도 강화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국내 사업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해외 자원개발 사업과 SK하이닉스 경영에 주력하고 있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의 미래 경영과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미래전략실을 신설한 것도 위기경영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기상황에 취약한 중견그룹들도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고 대응체제 마련에 나서고 있다. 최평규 S&T그룹 회장은 지난달 창업 33주년 기념식에서 “세계 시장과 패러다임의 변화, 경제 위기의 실상을 빨리 파악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위기 극복의 핵심”이라고 강조하고, 위기극복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