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공개 ‘배드파더스’ 유죄 확정(상보)
by백주아 기자
2024.01.04 10:33:57
개인 신상공개, 비방 목적 인정
인격권 및 명예훼손…"사적 제재 수단"
개인 입게 될 불이익·피해 정도 고려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며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사이트 운영자 구본창(61)씨에 대해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4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구 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선고유예란 가벼운 범죄에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보류했다가 면소(공소권이 사라져 기소되지 않음)된 것으로 간주하는 판결이다.
구 씨는 지난 2019년 5월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라고 제보를 받은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포함한 신상 정보를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1심은 지난 2020년 1월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7명 전원 무죄 평결을 받고 “피고인의 활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구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은 같은 해 9월 처음 열렸으나 당시 헌법재판소가 분명한 사실을 공표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형법 307조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조항의 위헌 여부를 심리함에 따라 재판이 잠정 중단됐다.
헌재는 2021년 2월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정보의 전파 속도가 빨라지고 파급 효과도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헌재 결정 후 8개월 만에 열린 2심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형 선고를 유예했다.
2심은 “양육비 지급과 관련한 문제는 개인 간의 채권·채무가 아닌 공적 관심 사안인 것이 사실이나 사인이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라고 봤다.
이어 “사적 제재가 제한 없이 허용되면 개인의 사생활이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 사건 신상정보에는 신원을 특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얼굴 사진을 비롯해 세부적인 직장명까지 포함돼 있는데 과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이런 정보가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사적 단체나 사인이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경우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사이트의 주된 목적은 양육비 미지급자 개인의 신상정보를 일반인에게 공개해 인격권과 명예를 훼손하고 그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해 의무이행을 간접적으로 강제하려는 취지로 사적 제재 수단의 일환에 가깝다”며 “신상공개로 인한 영향력과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이나 피해의 정도 등을 두루 고려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