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떼인 세입자, 임대인 찾아가 "불지른다"

by전재욱 기자
2023.01.13 11:00:04

임대보증금 2년간 밀린 임대인 찾아가 방화 협박
미수 그쳤지만 유죄 인정돼 징역형 집행유예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임대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임대인을 찾아가 “불을 지를 것”이라고 협박을 한 세입자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최근 깡통 전세 세입자 피해가 급증해 당사자 속을 태우고 있지만, 과격한 방식으로 답답함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자칫 스스로에게 화가 될 수 있는 점을 상기할 만하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 아들은 2020년 12월 임대로 살던 주택에서 계약이 종료했다. 그런데 임대인은 임대보증금 5000만원을 돌려주지 않았다. 보증금 반환은 이뤄지지 않은 채 차일피일 시간이 흘러 2022년에까지 이르렀다.

A씨는 아들 보호자로서 대신해 보증금을 받기로 하고 지난해 5월 임대인에게 연락을 취했다. 당시 임대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당신이 소유한 건물에 불을 지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 경유가 담긴 기름통을 사진으로 찍어서 함께 보냈다.



반응이 없자 A씨는 그즈음 기름통과 라이터를 들고 서울 모처에 있는 임대인 소유의 고시원을 찾아갔다. 임대인을 만날 수 없자, “당장 나오라”고 불을 낼 것처럼 협박했다. 그러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면서 방화는 미수에 그쳤다. 결국 A씨는 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에서 A씨의 혐의는 여과 없이 유죄로 인정됐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은 징역 1년2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했다. A씨 사정은 딱하지만, 임대인을 찾아가 불을 지를 듯이 행동한 게 협박에 해당하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웠다. 법원은 “기름통을 들고 임대인을 찾아가서 불을 지른다고 협박을 한 것은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A씨가 실제로 불을 지르려는 의도는 없었고 미수에 그친 점을 유리하게 참작했다. 사건 현장에서 경찰에 신고한 이는 A씨였다. 임대인과 만나기 어렵자 경찰관을 통해서라도 만남을 시도한 것으로 보였다. 법원은 “A씨가 후회하고 반성하는 점을 고려해서 형을 정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