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돌리는 우군들…'내로남불'에 발목 잡힌 위기의 日스가

by이준기 기자
2020.12.20 19:38:28

'고투 트래블' 논란에 지지율 석 달새 25% 가까이 폭락
조용한 연말 보내자더니…정작 배우 등과 '두 탕 회식'
산케이 등 親與매체도 질타…당내 '교체론' 분출 가능성

사진=AFP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자민당 내에서 ‘스가 내려놓기’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일본 정치 저널리스트 이즈미 히로시)

지난 9월 임기를 시작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불과 넉 달 만에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역대 3위의 지지율로 출범한 스가 내각은 최근들어 비판 여론이 지지 여론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일본 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20만 명을 넘어서는 등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방역당국을 지휘해야할 내각 수장으로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부적절한 행동으로 문제를 노출하면서 우군인 자민당과 보수언론에서도 한숨을 내쉬고 있다. 조기 낙마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이유다.

스가는 지난 14일 ‘스가표(標) 브랜드’인 국내여행 장려정책 ‘고투 트래블’(Go To Travel)에 대한 일시 중단을 공표했다. 코로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떠밀리듯 내린 결정이다. 불과 사흘 전까지 “코투 트래블이 코로나 감염을 확산시킨다는 증거는 없다”(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재상 담당상)는 게 스가 내각의 공식 입장이었던 만큼, 말 그대로 ‘즉흥적’ 결단이었던 셈이다. 이와 관련, 스가 내각은 “최대한의 예방 효과를 내기 위한 조처”(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라고 항변했으나 당장 “그렇다면 왜 진작 중단하지 않았느냐”는 반론에 부딪혔다. 전국여행업협회(ANTA) 회장이자 일본 여행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니카이 측에선 ‘스가가 니카이 간사장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니카이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자진 사퇴할 당시인 지난 8월 당시 스가 지지를 가장 먼저 표명하며 자민당 내 ‘막후실력자’로 평가받아온 인물이다.

일본은 최근 일주일간 하루평균 신규 감염자가 2600여명에 달한다. 20일 기준 누적 확진자 수는 20만명을 넘어섰다.

확진자가 늘어난 만큼 스가 지지율은 떨어졌다. 지난 12일 마이니치신문·사회조사연구센터 공동 여론조사(응답자 1065명)에 따르면 스가 내각 지지율은 지난달보다 17%포인트 곤두박질친 40%로 집계됐다. 출범 첫 달인 9월에 64%를 보였던 점에 비춰 불과 넉 달도 안 돼 25% 가까이 지지율이 빠진 셈이다. 특히 ‘고투 트래블’을 중단해야 한다는 답변이 67%에 달한 점이 정책 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국민들이 스가에 등을 돌리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정책적인 실패에만 기인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 11일 한 인터넷방송에서 뜬금없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가스’입니다”라는 농담조로 말문을 열었다. 국민은 코로나와 그에 따른 경제충격에 하루하루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말 그대로 분위기 파악을 못 한 것이다. 달나라에서 온 것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지난 15일 도쿄 긴자의 최고급 스테이크 전문점에서 자민당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비롯해 배우와 프로야구 단장 등 8명이 참석한 ‘망년회에 동석한 사실이 뒤늦게 불거진 점도 가뜩이나 심기 불편한 일본 국민들이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더 가관인 점은 이 망년회 참석 직전 기업인들이 주를 이룬 15명 규모의 만찬에 들렀다 왔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국민들에게는 모임을 자제하라고 요청해 놓고는 막상 본인은 하루 두탕씩 만찬장을 돌았다는 얘기다.

스가는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이튿날(16일) “인사를 하고 떠나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40분 정도 (회식 자리에) 남아 있어서 여러 이야기를 하게 됐다. 국민의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고 고개를 숙였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식 직전까지 스가는 “‘조용한 마스크 회식’을 제발 부탁한다. 나도 오늘부터 철저하게 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문제는 집권 넉달만에 벌써 ‘레임덕’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집권 자민당 내부에서부터 비난 목소리가 들린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자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코로나 대책을 말하면서 웃기나 하고 위기감이 없어 보인다”고 일갈했다. 친(親) 스가 매체로 잘 알려진 산케이신문은 최근 사설에서 스가의 코로나 뒷북 대응과 현실 인식의 부족함을 질타하는 강경 비판을 쏟아내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우호 매체의 등 돌림 현상은 레임덕과 맞물리는 게 통상적인 만큼, ‘불길한 징조’로 풀이하곤 한다.

이즈미 히로시는 “내년 이후에도 감염 확산이 수습되지 않으면 스가의 지지율은 더 떨어질 수 있다”며 “이 경우 새 총리하에서 조기 중의원 선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요구가 분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