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 방폐물 관리 부지선정 절차 내년 착수 추진한다

by김형욱 기자
2022.07.20 11:01:46

산업부, 2023~2060년 R&D 로드맵 발표…연내 확정
내년 개시 목표로 운반-저장-부지-처분 기술 개발
총1.4조원 투입해 104개 요소기술 선진국 수준 확보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정부가 내년부터 13년에 걸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방폐물) 관리 부지선정 절차 착수를 추진한다. 원자력발전소(원전) 확대 정책에 발 맞춰 2060년까지는 사용 후 핵연료(고준위 방폐물) 처리에 필요한 기술을 완비하고 실제 중간·영구처리시설을 운영한다는 목표다.

후보 지역들의 반발로 40년 남짓 실증조차 못 해 온 고준위 방폐물 처리 문제에 진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관심을 끈다.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앞 가운데)을 비롯한 관계자가 20일 오후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연구개발(R&D) 로드맵 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산업부)
산업통상자원부는 20일 오후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에너지기술평가원·한국원자력환경공단 등 산하 관계기관과 토론회를 열고 고준위 방폐물 연구개발(R&D) 로드맵 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 같은 의견 수렴 절차를 토대로 연내 이 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정부가 고준위 방폐물 R&D 로드맵 안을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산업부는 이 로드맵 일정을 2023~2060년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당장 내년부터 13년에 걸친 부지 선정 작업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016년 7월과 2021년 12월 두 차례에 걸쳐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을 마련한 바 있다. 부지 선정 절차 착수 후 37년 동안 어떤 절차에 의해 부지를 확정(+13년)하고 중간저장시설을 확보(+7년)하고, 영구처분시설을 건설(+7년)할 것인지를 담았다. 그러나 이 계획을 언제 시작할 것인지, 관련 기술개발은 어떻게 할 것인지는 구체화하지 않은 상태였다. 산업부는 이에 이번에 별도의 R&D 로드맵을 수립하고 그 시점을 2023~2060년으로 특정했다.

개시 후 37년에 걸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시나리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윤석열 정부는 지난 5일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통해 2030년 원전 비중 30% 이상 확대(당초 계획 23.9%) 방침을 확정하고, 원전을 태양광, 풍력 같은 저탄소 친환경 에너지원을 뜻하는 ‘K-택소노미’에 포함키로 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40년 남짓 해결 못한 고준위 방폐물 처리 문제 해결이 필수다. 국내 26기 원전에는 이미 50만여 다발의 사용후 핵연료가 임시 저장돼 있고 2031년 고리·한빛 원전본부를 시작으로 차례로 포화 예정이다. 중간·영구저장시설이 없다면 사용후 핵연료를 버릴 곳이 없어 원전 가동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황주호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 용량 확보 없는 원전 가동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와 같은 상황”이라며 “하루빨리 사용후 핵연료 관리를 법제화를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생산현장(원자력공장)에서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준위 방폐물 관리는 전 세계적 난제다. 현재 부지 확보 단계에 진척이 있는 국가는 핀란드(건설중), 스웨덴, 프랑스(이상 부지 확보), 일본(신청지역 조사중) 4개국뿐이다. 미국도 관련 기술은 확보했으나 부지 확보는 아직이다. 우리 정부도 1986년에도 영구처분장 후보지로 영덕, 울진, 포항을 선정했으나 주민 반대로 실증조차 진행하지 못했다. 1990년 태안 안면도와 고성, 양양과 1994년 인천 굴업도도 같은 이유로 무산됐다.

정부는 이번 R&D 로드맵을 통해 관련 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이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미국, 핀란드, 스웨덴 등처럼 중간·영구처리시설 및 지하연구시설 부지 확보에 나선다. 산업부에 따르면 우리 관련 기술은 운반·저장 부문에선 선도국 대비 83.8%, 79.6% 수준에 이르렀으나 부지(62.2%)나 처분(57.4%) 부문 기술은 아직 추격그룹에 속한 것으로 평가된다. 고준위 방폐물 운반-저장-부지-처분에 꼭 필요한 104개 요소기술 중 22개는 확보했으나 49개는 개발중, 나머지 33개는 개발이 필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연구개발(R&D) 로드맵 안 중 부지선정 관련 R&D 계획. (표=산업부)
산업부는 이번 로드맵을 통해 고준위 방폐물 처리 기본계획 추진 일정에 맞춰 이번에 도출한 104개 요소기술과 343개 세부기술을 제때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이를 위해 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을 활용해 총 1조4000억원을 투입기로 했다. 순수 연구개발에 9002억원, 연구용 지하연구시설 구축에 4936억원예 예산을 책정했다. 산업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997년 이후 25년 동안 투입한 4000억원의 3.5배에 이르는 투자규모다.

진통이 예상되는 부지 확보와 관련해서도 2029년 28개 요소기술과 95개 세부기술을 차례로 확보해 부적합지역 배제나 기본·심층조사 단계별로 적용키로 했다. 부지 조사의 객관성과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2027년까지 인공지능(AI), 머신러닝 등 첨단 IT기술을 활용한 부지조사·평가 체계도 개발하기로 했다.

또 관련 전문 연구인력이 연평균 300여명 필요하다고 보고 현재 140명 수준인 전문 연구인력도 추가로 양성키로 했다. 산업부는 이미 서울대와 손잡고 이곳에 고준위방폐물 관리 융합대학원을 설립기로 한 바 있다.

정부는 올 하반기 중 이 로드맵 안을 확정하고,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 제정과 국무총리 산하 전담조직을 꾸려 로드맵을 하나씩 이행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오는 28일 대전에선 부지·처분 분야, 8월4일 부산에선 운반·저장분야 후속 토론회를 열어 의견 수렴에 나선다. 이 기간 핀란드, 프랑스 등 선도국 전문기관의 자문도 받을 예정이다.

박일준 산업부 제2차관은 이날 행사에서 “과학적 합리성에 기반한 안전관리 기술 확보로 고준위 방폐물을 안전 관리해 나갈 계획”이라며 “과학계도 국민과 지역사회 모두 안심하고 믿을 수 있도록 기술 확보에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연구개발(R&D) 로드맵 안 중 투자 규모 및 재원조달 방안. (표=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