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부자 한켠엔 벼락거지…자산격차 더 커졌다

by하지나 기자
2022.01.02 23:35:00

[코로나가 안겨순 숙제 ''양극화'']
올해 전국 아파트값 20.18%↑..2002년 이후 최대
전세시장 불안..로또 청약시장도 현금부자만 가능
부동산 증여 가속화..20대 이하 다주택자 1.5만명
똘똘한 한채 선호에 지역별 양극화도 심화될 듯

[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며 맞벌이를 하고 있는 김 씨(35세)는 지난해 광진구 구의동에 전용면적 85㎡ 아파트를 12억1000만원에 매수했다. 그 당시에도 이미 집값이 많이 올라서 불안한 마음이 컸지만 주택담보대출과 시부모님 증여를 통해 겨우 집값을 마련했다. 이 아파트는 최근 16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김 씨는 “15억원을 넘어서면 아예 대출도 안된다는데 하마터면 집을 못 살뻔 했다”면서 “주변에서 부동산 얘기할 때마다 내심 그때 과감하게 결정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KB리브온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값은 지난해말 대비 20.18% 상승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폭등기였던 2002년 22.78% 상승 이후 19년 만에 최대 상승률이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수도권 아파트값은 올 한해 25.42% 올라 2006년(29.27%)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올해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급등한 지역도 경기·인천에 집중됐다. 경기 오산(49.30%)과 시흥(43.11%)은 올해 아파트값 상승률이 40%대에 달했고, 인천 아파트값도 32.93% 오르면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 상승률을 나타냈다.

하지만 집값이 급등하면서 부동산 유무에 따라 자산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 소득 증가 속도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위소득 가구가 서울에서 중간 가격의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7년 6개월간 모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B리브온에 따르면 9월 기준 서울의 주택가격 및 소득 분위별 PIR(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을 집계한 결과 3분위 소득 대비 3분위 집값 비율은 17.6을 나타냈다. 2020년 9월에는 15.6으로, 1년새 2년이나 늘어났다. 3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020년 3분기 478만원에서 올 3분기 517만원으로 8%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3분위 평균 매매값은 8억9051만원에서 10억8793만원으로 22% 상승했다.

거주요건이 강화되면서 전세를 낀 매수하는 갭투자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대상이 ‘2년 보유’에서 ‘2년 보유+2년 거주’로 강화됐고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소재 시가 3억원 초과 아파트를 구매하면 전세대출이 즉시 회수된다. 전세시장은 집값을 올리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하지만 주거사다리로 기능하면서 서민 주거 안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당첨되면 로또라는 청약시장도 소위 가진자인 ‘현금부자’들의 전유물이 됐다. 분양가 9억원 이상은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와 세부담 증가는 부동산 증여를 앞당겼고 역설적으로 부의 대물림은 심해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 증여건수는 9만1866건을 기록했다. 2006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대치다. 월별로 살펴보면 다주택자 중과세 상향 등 각종 부동산 세금 규제가 쏟아졌던 지난해 7월 전국 아파트 증여건수가 1만4153건으로 가장 많았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통계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주택소유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20대 이하 다주택자는 1만5907명이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인 8293명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심지어 미성년자 다주택자는 1377명에 달했다. 미성년자 다주택자 역시 절반 이상(53.7%)인 739명이 수도권에 살고 있다. 상위 1%와 하위 10%의 주택자산가액 격차는 70배 가까이 차이를 나타냈다. 상위 1%의 평균주택자산가액은 30억9000만원인데 반해 하위 10%의 평균주택자산가액 4500만원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주택자 보유세 강화와 1주택자 세부담 완화가 맞물리면서 ‘똘똘한 한채’ 선호 현상이 강해질 수밖에 없어서다.

이미 거래절벽 속에서도 2030세대의 영끌매수가 집중됐던 노도강(노원·도봉·강북)이나 금관구(관악·금천·구로) 등 서울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하락 거래가 감지되고 있다. 반면 강남3구 등 초고가주택은 신고가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가격동향에 따르면 이달 셋째주 기준 관악구·금천구는 보합전환했다. 강남구(0.09%), 송파구(0.07%), 서초구(0.12%)는 상승폭이 둔화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의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달 15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94.49㎡가 40억5000만원(25층)에 거래되면서 신고가를 기록했다. 지난 11월 같은 아파트가 37억5000만원(4층)에 계약된 후 한 달새 3억원이나 올랐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저성장기에 돈을 풀면 지방보다 대도시 부동산 가격이 더 많이 오른다”면서 “진작에 대규모 주택 공급을 통해 집값을 안정화시켜야 했는데 아쉬운 부분이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