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판박이 이천참사, 못 지킨 12년전 盧대통령의 주문

by박기주 기자
2020.04.30 15:09:40

29일 이천 물류창고서 대형화재…근로자 38명 희생
12년 만에 같은 도시서 같은 원인으로 `판박이 참사`
과거 정권서 대책 마련 주문했지만…참사 되풀이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경기도 이천 창고 화재로 수십명 사망”

황금연휴를 앞두고 마치 12년전 사건을 재현한 듯 똑같은 사고가, 그것도 똑같은 도시에서 발생했다. 이 기간 동안 무려 네 명의 대통령, 두 번의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아무도 사고를 막지 못한 것이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현장 합동 감식 시작 (사진=연합뉴스)


화재는 지난 29일 오후 1시 경기도 이천 모가면 한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 지하 2층에서 시작됐다. 이 불은 연기와 함께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뒤덮었고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78명 모두가 화마에 휩싸였다. 그 결과 38명이 사망했고 1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번 사고 원인으로는 공사 현장에서 사용한 우레탄과 샌드위치 패널이 지목됐다. 우레탄 작업 중 발생한 유증기에 용접 작업으로 불꽃이 튀면서 폭발이 일어났고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건물이 화재 확산속도를 더욱 가파르게 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유독가스를 마신 인부들은 출입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그대로 참변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고를 접한 이들은 자연스레 2008년 있었던 대형 화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경기도 이천에서 발생했던 그 사고 역시 우레탄 작업을 하던 중 발생한 유증기에 용접 불꽃이 튀면서 발생했다. 그 사고로 무려 40명이나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사건을 접한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사고가 발생한 제도적 원인을 보면 규제 문제와 깊이 관련돼 있다”며 “제도 개선책과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수습대책을 조속히 추진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 후 정부는 냉동창고와 공사현장 등에 대한 안전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바뀐 건 없었고 참사는 되풀이됐다. 멀리 되짚어 볼 필요도 없이 제천과 밀양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수십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도 불과 몇 년 전이다. 소를 잃었다면 외양간이라도 고쳐 다신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국민이 정부에게 바라는 것이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

이번 이천 화재사고를 보고 받은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과거 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뼈저린 반성이 있어야 한다”며 자책했다. 그리고 철저한 조사를 주문했다. 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이번엔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길 다시 한 번 기대해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