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유가 '더블쇼크'에 증시 패닉…美 거래중지에 伊 11% 폭락(종합)

by김정남 기자
2020.03.10 09:49:58

전세계 금융시장 '검은 월요일' 공포감
美 23년만 서킷브레이커…伊 증시 11%↓
코로나·유가 '더블 쇼크' 亞 또 하락 출발
초안전자산 국채·급값 기록적인 급등 국면
공포의 '머니무브'…연준·백악관 '골머리'

독일 등 유럽 주요국 증시가 9일(현지시간) 일제히 폭락 장세를 연출한 가운데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의 한 트레이더가 책상에 머리를 파묻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제공)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김정남 기자] ‘더블 쇼크’에 전세계 증시가 와르르 녹아내렸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와중에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뉴욕 증시는 23년 만에 ‘서킷브레이커(거래 일시 중단)’를 발동했다. 코로나19 충격이 연일 커지고 있는 이탈리아 증시는 무려 11% 넘게 폭락했다.

그 대신 안전한 자산으로 숨으려는 ‘머니무브’는 가속화했다. 초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0.5%대까지 급락(국채 가격 급등)했다. 선진국 국채와 함께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꼽히는 금 역시 가격이 폭등했다. 시장은 이미 금융위기급 패닉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9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2013.76포인트(7.79%) 추락한 2만3851.02에 마감했다. 이는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 이후 최대 하락 폭이다. 투자자들이 ‘검은 월요일’ 공포에 떤 것이다. 지수 종가는 1년2개월여 전인 지난해 1월 8일(2만3787.45) 이후 가장 낮다. 지난해 내내 이어진 ‘강세 랠리’를 단박에 내줬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225.81포인트(7.60%) 주저앉은 2746.56에 거래를 마쳤다. S&P 지수는 이날 오전 9시30분 개장과 함께 폭락하더니 약 4분 만에 거래가 멈췄다. 주가가 너무 떨어지자 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매매를 일시 정지하는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한 탓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서킷브레이커로 거래가 멈춘 건 1997년 10월 ‘피의 월요일’ 이후 약 23년 만에 처음”이라고 썼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624.94포인트(7.29%) 내린 7950.68에 장을 마감했다.

유럽 주요국 증시의 하락 폭은 더 가팔랐다. 코로나19 쇼크가 가장 큰 이탈리아의 FTSE MIB 지수는 무려 2323.98포인트(11.17%) 폭락한 1만8475.91에 장을 마쳤다. 미국처럼 지난해 1월 2일(1만8218.40) 이후 1년2개월여 만의 최저치다. 이탈리아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가 1만명에 육박하자 이동제한령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외에 영국 FTSE 100지수는 496.78포인트(7.69%) 미끄러진 5965.77로 거래를 마쳤다. 이 정도 낙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2년 만의 최대다. 프랑스 CAC 40지수와 독일 DAX 30지수도 각각 8.39%와 7.94% 주저앉았다. 범유럽 지수인 유로 Stoxx 50지수는 8.45% 폭락했다.

시장에서는 코로나19 공포가 그 어느 때보다 팽배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현재 미국 내 코로나19 감염자는 566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6일 밤 기준 300명 수준이었던 데서 거의 2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특히 금융 중심지 뉴욕주(州)에서 감염자 100명을 돌파했다.



여기에 석유파동이 증시에 또다른 펀치를 날렸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간 원유 공조 체제에 균열이 일면서 사우디가 증산을 선언하자, 유가가 곧두박질 쳤기 때문이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거래일 대비 배럴당 24.6%(10.15달러) 하락한 31.1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일일 기준 낙폭은 1991년 걸프전 이후 가장 크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사우디와 러시아는 명백하게 석유전쟁을 시작했다”며 추후 20달러대까지 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날 폭락했던 아시아 증시는 또 하락 출발하고 있다. 10일 오전 9시37분 현재(한국시간 기준) 일본 닛케이 지수는 737.71포인트(3.74%) 급락하고 있다. 일본 토픽스 지수는 3.84% 내리고 있다. 한국 코스피 지수와 코스닥 지수는 각각 0.70%, 1.08% 하락하고 있다.

뉴욕증시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폭락을 기록한 9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 입회장의 한 트레이더가 증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제공)


위험자산에서 빠져나간 돈은 일제히 안전자산으로 향했다. 공포가 부른 전형적인 머니무브 국면이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전세계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0.5685%까지 떨어졌다. 사상 최저다. 장중에는 0.3% 초반대까지 수직낙하했다. 국채가격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급등해도 여전히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찾고 있다는 뜻이다. 연방준비제도(Fed) 통화정책에 민감한 국채 2년물 금리는 0.3967%까지 내렸다. 연준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연방기금금리(FFR)는 1.00~1.25%. 시장은 연준이 수차례 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고 재촉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외에 독일, 영국 등 유럽 주요국 국채금리도 일제히 급락했다.

또다른 안전자산인 금 가격 역시 마찬가지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금은 전날보다 온스당 0.2%(3.30달러) 상승한 1675.70달러를 기록했다. 금값은 장중 한때 온스당 1700달러 넘게 올랐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연준은 또다시 유동성 공급책을 내놨다. 연준의 공개시장운영을 맡는 뉴욕 연방준비은행(뉴욕 연은)은 이날 성명을 통해 하루짜리(오버나이트) 환매조건부채권(Repo·레포) 거래 한도를 오는 12일까지 기존 1000억달러에서 1500억 달러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14일짜리 기간물 레포 한도는 기존 200억달러 수준에서 450억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레포 개입을 점차 줄여나가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물러선 것이다. 연준은 오는 17~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추가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백악관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와 함께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10일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등과 회동해 대규모 감세안 등 가능한 조치들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적기에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10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시장을 모니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