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수연 기자
2009.08.20 14:36:17
사후관리 책임은 경미하다? 금융계 `갸우뚱`
KIC 투자 손실 책임은 왜 안따지나
[이데일리 김수연기자] 황영기 KB금융(105560)지주 회장(전 우리은행장 겸 우리금융지주(053000) 회장)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중징계 방침이 금융권에서 연일 뜨거운 논쟁거리다.
경영판단도 당국의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는가가 논란의 핵심으로, 논자마다 주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다만 정답이 없는 이 어려운 주제는 일단 차치하고, `형평성`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당국의 중징계 방침에 허점이 많다는게 금융권의 정서다. 유독 황 회장에 대해서만 엄히 책임을 묻는데 대해 금융권 인사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부채담보부증권(CDO)과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등 파생상품 투자는 황영기 우리은행장 시절인 2006년 뿐만 아니라 후임 박해춘 행장 재임중이던 2007년 5월에도 이뤄졌다.
또 황행장 퇴임 이후, 박해춘 행장 재임기간인 2007년 4분기에 45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때 박해춘 행장은 "관련 부실을 다 털었다"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손실은 계속돼 결국 1조 6200억여원이 손실처리됐다. 그래서 당시 박해춘 행장이 사후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그 책임은 가벼운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은 황 행장에 대해서는 `직무정지 상당`이라는 중징계를, 후임 박해춘 행장과 이종휘 당시 수석부행장에 대해서는 `주의적 경고`라는 가벼운 징계만 예고하고 있다.
한 은행 임원은 "내가 심사를 해서 대출을 내줬고 재임중에 문제가 없었는데, 후임자 때 연체가 발생했다면 이 후임자는 서둘러 대출을 회수하는게 당연하지 않은가"라며 "연체가 부도로 이어지기까지 손놓고 구경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책임을 묻는 대상도 오락가락 한다. 지난해 상반기, 이미 예보는 파생상품 투자 실패에 따른 책임을 물어 우리은행을 문책한 바 있다. 이때 주요 징계대상은 업무 담당 및 관련 부행장 3명으로, 정직 등의 처분이 내려졌다. 황영기 행장은 `총괄 관리를 소홀히 한 도의적 책임`을 물어 성과급 일부가 삭감 됐었다. 그런데 지난번과 달리 이번 금감원 징계 대상자는 황영기·박해춘 행장, 이종휘 당시 부행장이다. 책임추궁 대상이 들쑥날쑥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차원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투자 실패가 당국의 징계 대상이라면, 역시 손실이 난 다른 투자들은 왜 문제삼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규모와 시기가 다양할 뿐, 은행권에는 비슷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해외에 투자한 기관들은 너나할 것 없이 손실을 입었다. 하나은행은 메릴린치 주식을, 국민은행은 카자흐스탄 BCC은행 주식을 샀다가 엄청난 평가손을 입었다.
`우리은행이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이기 때문에 경우가 다르다`고 한다면 한국투자공사(KIC)의 사례가 대표적인 논란거리다.
KIC는 지난해 2월 메릴린치에 모두 20억달러를 투자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가 폭락을 거듭한 끝에 결국 지난해 말 뱅크오브아메리가(BOA)에 합병되는 신세가 됐다.
이로 인해 KIC는 금융위기가 한창일때 엄청난 평가손을 입었고, 주가가 많이 회복된 지금도 원금을 회복하기는 커녕 반토막에 가까운 상태다. 혈세의 반을 `몰빵`투자로 허공에 날린 셈이다.
그러나 이 투자에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징계도 없었다. 이 투자의 실질적 의사결정권자가 누구였는지 조차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외견상으로는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KIC 사장, 민간인 6명 등 9명으로 구성된 투자운영위원회가 투자를 결정했지만 재정경제부가 강압적으로 밀어부쳤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관계 공무원들은 익명의 보호막 아래 숨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기본적인 균형이 없어 이번 황 회장의 징계는 정당성에 대한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라며 "사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징계가 100% 순수한 의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 이가 거의 없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