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우크라에 무기 지원 안 한다"…삐걱이는 서방 연대

by박종화 기자
2023.09.21 10:34:03

'곡물 수입 금지' 두고 우크라, 폴란드 등 WTO 제소
폴란드 대통령 "우크라, 구조자까지 익사시키려" 비판
슬로바키아선 친러정당 독주…미국서도 우크라 지원 회의론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맞서 단일대오를 과시했던 서방의 균열이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 같은 불화가 러시아의 힘을 키워줄까 우려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UN)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AFP)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따르면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이날 현지 폴자츠 방송에 출연해 “우리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폴란드 군대를 현대화하고 빠르게 무장시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로 만드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도 전날 폴란드 언론들과 만나 “물에 빠진 사람이 무엇이든 붙잡으려 드는 것처럼 우크라이나가 행동하고 있다”며 “물에 빠진 사람은 매우 위험하며 구조자까지 익사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우크라이나를 ‘물귀신’에 비유한 셈이다. 그는 “우리는 우리가 받는 피해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권리가 있다”고 했다.

폴란드는 러시아 침략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운 나라로 꼽힌다. 러시아와의 역사적 악연 때문이다. 전쟁 이후 국내 총생산의 1.3%에 해당하는 물자와 자금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중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전투기 지원을 결정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우호 관계는 최근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 문제를 두고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산 농산물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고수하고 있는 폴란드와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 세 나라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로 했다. 반면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산 저가 농산물로부터 폴란드 농업을 지켜야 하며 이것이 우크라이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폴란드는 내년 만료되는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우대 조치를 연장하지 않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반러-친우크라이나 대오의 균열은 폴란드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미사일과 전투기 등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에 앞장섰던 슬로바키아에서도 이상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오는 30일 총선을 앞두고 슬로바키아에선 친러 사회민주당이 지지율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섰던 현 중도우파 내각이 내분 등 실정을 거듭하면서 사민당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사민당을 이끄는 로베르트 피초 전(前) 총리는 나토와 대러 제재를 비판하며 자신이 집권하면 우크라이나 지원을 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최근엔 미국에서도 공화당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240억달러(약 32조원)가 넘는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을 짰지만 공화당 강경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공화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과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고해 보였던 서방의 연대가 흐트러지고 있는 건 전쟁이 1년 반 넘게 장기화하고 있는 탓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6월 러시아에 대한 ‘대반격’을 공식화했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를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 같은 분열이 러시아에게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날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일부 유럽 국가가 우크라이나와 연대하는 척하면서 러시아에 판을 깔아주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