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산업의 힘)①"잘 키운 車 하나, 열 산업 안부럽다"
by정재웅 기자
2010.09.30 12:35:00
자동차 산업, 한국 경제 키운 든든한 '버팀목'
관련 산업도 동반성장 유발..산업 전분야 발전 유도
스타 메이커 육성·정부의 정책 지원·엔지니어 양산 등 과제도
[이데일리 정재웅 기자] 요즘은 세계 어디 도시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한국산 자동차. 하지만 한국이 '자동차 생산국'으로 인정을 받게 된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자동차 산업에 진입하게 된 계기는 한 기업가의 신념에서 비롯됐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선진국이 후진국과 합작사업을 하면 거의 예외없이 그 후진국을 단순한 시장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국제경쟁력을 갖춘 고유모델 자동차를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했다.
1976년 현대차는 남미 에콰도르에 포니 7대를 처음으로 수출한다. 현대건설이 정부에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겠다는 신청서를 제출한 지 7년만에 해외 수출의 물꼬를 튼 것. 35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글로벌 5위의 자동차 강국으로 변모했다.
정 명예회장이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마음 먹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자동차 산업과 해당 국가의 경제규모. 경제 규모가 크고 선진국일수록 세계 무대에서 통하는 자동차 회사를 갖고 있다는 점에 이었다.
| ▲ 1986년 1월20일 울산부두에 늘어선 엑셀 5도어 1050대가 올리브에이스호에 선적되기 시작했다. 한 기업가의 신념에서 시작된 한국 자동차 산업의 신화는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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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나라일 수록 잘 사는 국가였다. 우리 경제의 몸집을 불리기 위해서는 모멘텀이 필요했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자동차 산업이었다.
이런 생각은 1967년 정부에 제출한 현대자동차 설립 신청서에 명확히 나타난다.
신청서에는 "수입대체 산업으로 국가 경제발전에 공헌할 뿐만 아니라 장차 우리나라 경제를 선도할 수출 전략 산업으로 적극 육성하겠다"고 명시돼 있다. 자동차 산업을 지렛대로 우리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중장기 청사진이었던 셈.
구상은 현실이 됐다. 2008년 기준,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의 생산액은 총 118조3000억원으로 제조업 전체의 10.5% 를 차지했다. 직·간접 고용은 166만4000명으로 전체 산업의 7.1%를 점하는 거대산업이 됐다.
조세액은 총 세수의 15.3% 인 31조1000억원, 부가가치는 전체 제조업의 10.3% 에 달하는 37조7000억원. 전자와 더불어 자동차 산업이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 됐다. 자동차 산업의 성장이 한국 경제를 세계 10위권으로 끌어올린 원동력중 하나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수출액은 총수출 중 비중, 무역흑자는 전체 무역흑자 중 비중 *미국은 795억달러 적자. 전체 무역적자 중 20.2% 차지 *관련고용은 제조업 중 비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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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과 국가 경제와의 상관관계는 역사적인 사실로도 설명된다. 대표적 자동차 강국인 유럽 국가들의 경우 19세기 후반 증기차와 가솔린차 발명에 성공하면서 경제가 비약적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20세기 이후 자동차 대량생산을 통한 대중화를 선도하면서 세계 경제의 패권을 거머쥘 수 있었고, 일본은 20세기 후반들어 소형차 시장 확대와 함께 급성장,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선진국일수록 유명한 자동차 회사들을 소유하고 있다. 기술력과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하고, 소비시장이 뒤를 받쳐줘야 성장할 수 있는 게 자동차 산업. 국가 경제 규모와 수준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명차는 나올 수 없다.
관건은 기술력. 얼마나 많고, 우수한 첨단기술을 적용했느냐에 따라 명차 여부가 결정된다. 이같은 특성으로 인해 자동차 산업의 발전은 곧 주변 산업의 동반성장을 가져온다.
최근 개발된 차량들은 다양한 첨단 기술들을 접목하고 있다. 전자공학·IT와의 융합은 해묵은 이야기. 이젠 로봇공학, 에너지·소재기술, 생명공학은 물론 나노기술까지 적용된다. 자동차 사업 자체가 첨단융합기술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술이 좋으면 그만큼 좋은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 좋은 제품이 시장에서 호평받는 것은 당연지사.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회사는 시장을 통해 이윤을 거둬들이고, 기업의 성장은 투자와 고용, 소비를 통해 국가 경제성장의 활력소가 된다. 이런 순기능 순환고리의 정점에 자동차 산업이 있다.
최근 중국과 인도 등을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을 대거 육성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중국의 경우 자국내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려는 외국 업체들은 반드시 자국 회사와 합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국은 거대한 소비시장을 내주는 대가로 선진 기술력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로부터 기술을 습득한 중국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위협하는 주체로 부상했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 됐고, 유럽의 명차 볼보를 인수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 메이커들의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차(005380)와 기아차(000270)를 필두로 한국산 자동차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일본, 유럽 브랜드들과 어깨를 겨루는 수준이다. 현대·기아차의 세계 1위 목표도 허황된 꿈은 아니다.
등산에서는 정상 직전이 가장 힘들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과거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은 더욱 거세지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 *글로벌 완성차 업체 순위 변화(괄호 안은 점유율) *출처 : Global Ins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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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수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 자동차 메이커들도 일본의 도요타와 같은 스타 메이커로 성장해야 한다"며 "고객은 물론, 부품업체 등 협력사와 심지어 시만단체들까지도 칭송할 수 있는 기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조업이 강한 국가가 세계를 제패하며 제조업의 중심에는 자동차가 있다"면서 "결국 세계 경제의 패권은 그 나라가 자동차 산업을 얼마나 성공시키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