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시대)미리 가 본 2009년..김과장의 하루

by백종훈 기자
2007.04.02 13:25:49

포드 SUV 타고 출근..점심엔 스테이크
소노마밸리 포도주 마시며 TV 시청
소비자이익 증가..農心엔 주름살만


[이데일리 백종훈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아직 세부내용이 다 확인되진 않았지만 소비자들은 한미FTA로 인해 질좋은 상품을 보다 싸게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미FTA 2년 후, 가상인물 김 과장의 하루를 통해 변화된 생활 주변을 살펴본다.



2009년 4월1일 수요일 아침. S전자 입사 11년차 김모(37) 과장은 미국 포드사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이스케이프(Escape) XLT 2.3`을 타고 출근길에 나섰다.

김과장은 최근 이 차를 2400만원 주고 샀다. 약 2년전이었으면 3500만원이 넘게 줬어야 할 차다.

하지만 연초 발효된 한미FTA로 수입자동차 관세가 낮아지면서 미국차의 가격이 1000만원이상 내렸다.

라디오를 켰더니 엔저 현상이 끝나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미국시장을 경유해 우회수입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한다. 부품 65% 정도만 미국에서 조달하면 미국산으로 인정된다니. 김과장은 `조금 더 기다렸다 도요타 차도 알아볼 걸`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느덧 점심시간. 김과장은 S텔레콤 김팀장과의 점심약속 장소인 T패밀리 레스토랑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 식당에선 미국산 쇠고기가 연초부터 수입되면서 미국산 스테이크()를 새 메뉴로 내놨다. 350g이 넘어 양도 풍부한데다 다른 국내산 스테이크 보다 값도 1만4000원, 즉 30%이상 싸다. 맛도 좋다.

김과장은 계절과일 세트도 시켰다. 요즘은 미국과일 천지다. 오렌지와 자몽, 바나나 등이 맛깔스럽다.

밀러 맥주도 20~30% 싸졌다. 덩달아 국내산 맥주값도 내려갔다.




김 과장은 국내 굴지의 기업 S전자에서 정보통신사업부 무선통신 마케팅 담당을 맡고있다. 연초 발효된 FTA로 인해 미국 M사의 저가 휴대폰 공세가 본격화되고 있어 대책회의가 열렸다.

그룹 전략기획실 박 전무가 김 과장과 실무관계자들을 다그치기 시작한다. 박 전무는 "무선인터넷 기능, 화상통화 기능을 뺀 미국산 저가폰이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며 "대안이 뭐냐"고 물었다.

김 과장은 지난 10개월간 준비한 저가 단말기로 맞불을 놓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진 않다. 미국 저가폰은 관세도 낮아진데다 원가절감을 10년 가까이 꾸준히 해온 터라 고가폰 위주였던 S전자가 원가 경쟁을 하기엔 어려운 점이 많다.



지옥같은 회의가 끝나고 어느덧 저녁 7시30분. 김 과장은 시내 백화점에서 아내 유씨와 만나 장을 봐서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아내 유씨는 외국계 H은행에 다니고 있다. 그녀는 토종 은행들과의 서비스경쟁에 뒤지지 않기 위해 야근을 밥먹듯 한다. 가족을 위한 장보기는 사치처럼 생각될 정도로 바쁜 일상이다. 그녀는 원래 프라이빗뱅킹(PB) 담당이었지만 최근 일선 영업에 투입되는 등 1인2역을 맡고있다.

그러나 오늘은 남편과 아이를 위해 일을 과감하게 접고 은행문을 나선다. 부부는 미국 캐쥬얼브랜드 갭(Gap) 매장에서 5살짜리 아들에게 입힐 T셔츠 하나를 골랐다. T셔츠 가격이 지난달 김과장이 미국출장때 알아본 가격과 거의 같다.
 
미국산 포도주 소노마밸리 캔우드 까베르네 소비뇽()도 구입했다. FTA 이전보다 15% 저렴한 2만원 후반대의 가격.

집에 들어오니 8시가 넘었다. 둘은 오랫만에 저녁을 같이 하고 치즈 안주에 아까 백화점 매장에서 산 포도주를 따서 한잔씩 마신다. 가족과의 시간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거실의 소니 LCD TV에선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히어로` 시즌9 마지막회가 나오고 있다. 요즘 방송엔 해외 편성물이 부쩍 늘었다. 완성도 높은 미국드라마도 많다.

김과장은 원래 미국드라마를 좋아해 2년전엔 DVD로 빌려보곤 했다. 하지만 방송사 해외편성물 제한이 완화되면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당초 국내 지상파방송과 케이블TV의 외국방송물 편성비율 제한은 각각 20%와 50%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9년 지상파방송은 외국방송물 50% 편성제한을 받고있고 케이블TV는 전면 자율로 맡겨지고 있다.
 


김과장은 드라마가 끝나자 마감뉴스로 채널을 돌린다.

 

화면에선 전경과 대치한 농민들의 시위()가 한창이다. 농민 대표는 "한미 FTA로 농업이 다 망하게 됐다"며 "농촌을 살려내라"고 절규하고 있다.

TV속 기자는 한미FTA로 특히 과수 재배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전한다.

농민 실업자가 20만명을 넘어 사회 문제로 번질 조짐이라는 해설도 덧붙여진다.

김 과장은 점심 때 맛있게 먹은 미국산 스테이크와 계절과일 세트가 곤두서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무거운 마음에 전화기를 든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 아버지는 오늘도 잠못 이루는 밤을 보내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