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철우 기자
2007.03.15 14:11:59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지난 2003년 플로리다 말린스 스프링캠프. 한국프로야구가 자랑하는 대포인 삼성의 이승엽(현 요미우리)과 현대의 심정수(현 삼성)가 메이저리그 도전의 시험무대를 위해 합류해 있었다.
시범경기가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뒤 둘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던 존 킴에게 플로리다 구단 관계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하다. 아무래도 약속했던 것 만큼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할 것 같다."
존 킴은 황망하기 그지 없었다. 당초 플로리다는 2002년 이승엽이 시카고 컵스 캠프에 참가했을때 보다 많은 출장 기회를 주겠다며 둘을 초청했었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컵스 유니폼을 입고 7경기 11타석에 들어섰다.
결국 이승엽은 11타석,심정수는 13타석을 경험하는데 그쳤다. 경기수는 각각 10경기와 9경기였지만 한번 정도 치고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다. 경기 감각을 익힐 시간은 이승엽이 컵스 캠프에 참가했을때보다 오히려 적었던 셈이다. 왜 그런 일이 생긴 것일까.
플로리다 소속 선수들의 반발이 문제였다. 적지 않은 수의 선수들은 제프 톨보그 당시 플로리다 감독(시즌 중 잭 멕키언으로 교체)에게 "팀 소속도 아닌 한국 선수들에게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들 때문에 우리가 경기에 나서는 횟수가 줄어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결국 톨보그 감독은 당장 품 안의 자식들을 챙기는 쪽을 택했다.
그렇다면 당시 이승엽과 심정수의 기용에 불만을 가졌던 선수들은 누구 였을까. 플로리다 구단은 선수들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주전급 선수들은 아니라는 것이 정설로 전해지고 있다.
주전급 선수들은 이승엽 심정수와 출전 기회를 놓고 다툼을 벌일 까닭이 없었다. 이승엽과 심정수는 5회 이후에나 경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마이너리거들은 메이저리그 시범 경기서 5회 이후에 출전 기회를 얻는다. 흥미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5회 이후는 다소 맥빠진 흐름이 된다. 아무래도 이름값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대거 나서기 때문이다. 촉망받는 유망주들이 아닐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에겐 각별한 의미가 있다. 아직 메이저리그서 자리잡지 못한 고참급 선수들은 더욱 그렇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엔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들이 참가한다. 그 뿐 아니다. 약 30명 수준의 초청선수들이 합류해 기량을 겨룬다. 모두 70명 가량이나 되는 셈이다.
그 중에는 세계 각지를 돌고 돌아 다시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리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팀을 둘로 나눠 시범경기(스플릿 스쿼드)를 치르는 것도 워낙 많은 선수가 있기 때문이다.
팀별로 조금 다르지만 한국과 일본의 경우와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시범경기엔 팀별로 40명 안쪽이 참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개막 엔트리엔 들지 못하더라도 언제든 다시 기회를 노릴 수 있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메이저리그 엔트리는 25명 뿐이다. 그 중 대부분은 캠프가 시작되기 전 주인이 정해져 있다. 몇 남지 않은 자리를 놓고 수십명의 선수가 경쟁을 펼쳐야 하는 것이 바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다. 그 중에는 시범경기 일정이 끝나기도 전에 마이너리그로 쫓겨가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시범경기의 5회 이후가 소중할 수 밖에 없다. 어떻게든 구단의 눈에 들어야 한다. 반대의 경우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워지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지난해 잠시 SK서 뛰었던 피커링은 "97년에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었는데 같은 팀에 타이론 우즈가 있어 깜짝 놀랐다. 우즈는 꽤나 손꼽히던 유망주였다. 그런 선수와 뛴다는게 신기했을 정도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우즈가 사라져 버렸다.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저 정도 선수도...'라는 생각에 심란했었다"는 말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의 살벌한 풍경을 털어놓은 바 있다.
우즈는 이듬해 한국 무대를 노크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코리안 드림을 이룬 우즈는 일본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당시의 설움을 털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모두 우즈같을 순 없다. 현재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별반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선수들이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민 경우도 있다.
16일(한국시간) 탬파베이와 클리블랜드는 시범경기를 갖는다. 서재응이 선발로 나설 예정이며 류제국의 등판도 예고돼 있다. 같은 팀 최희섭과 클리블랜드 소속인 추신수도 대타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시범경기지만 메이저리그 사상 처음으로 한 경기에 4명의 한국인이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게되는 셈이다.
그러나 경기에 나서는 속내는 모두 다르다. 서재응은 선발 로테이션 진입을 보장 받았지만 나머지 세 선수는 입지가 좁다. 5회 이후 승부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상대적으로 연차가 많은 최희섭은 '마지막'을 걸고 도전중이다.
한국 야구사에 또 하나의 작은 역사로 남게 될 16일 경기서 4명의 코리안리거가 모두 웃을 수 있을까. 경기는 메이저리그 전문 채널 엑스포츠를 통해 오전 8시부터 생중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