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자식같이 키웠는데 또 살처분..정부 못 믿겠다"
by박진환 기자
2016.12.18 17:18:36
한달 가까이 된 AI 확산에 전국 곳곳이 전쟁터로 변해
오리·닭 사육농가서 대규모 살처분으로 사육기반 붕괴
턱 없이 부족한 비현실적 보상금 책정..농장주들 격앙
매년 가축전염병 되풀이... 정부·지자체 전문인력 태부족
전문가 "방역당국 면피성 행정만..근본적인 대안 모색"
| 지난달 발병한 고병원성 H5N6형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16일 충청권 곳곳에서 방역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박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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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천안=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농장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소독도 매일 했는데 이게 뭡니까? 내 자식같이 애지중지 키운 애들을 땅에 묻는 피끓는 심정을 알기나 합니까?”
지난달 발병한 고병원성 H5N6형 조류인플루엔자(AI)로 전국이 전쟁터다. AI 확산으로 인해 17일 현재 전국 8개 시·도의 27개 시·군, 313개 농가에서 1467만 9000마리의 닭과 오리 등 가금류가 도살 처분됐다. 또한 25개 농가, 338만 6000마리의 살처분이 진행 중이다. 지난달 16일 AI 바이러스가 첫 검출된 지 불과 한달 만에 1806만 5000마리가 살처분된 것이다.
얼마전 AI 양성반응이 나오면서 농장에서 키우던 닭 수십만마리를 살처분한 세종시의 한 농장주는 “2014년에 이어 올해에도 끝내 AI로부터 내 새끼들을 지키지 못했다. 정말 내 자식처럼 키웠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AI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정부가 시키는데로 농장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않고, 매일 소독약도 뿌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됐는지 알려주지도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자식같이 키운 닭들을 살처분하러온 인부들 식사를 농장에서 지원해주라는 통보에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충남 천안시 풍세면에서 만난 농장주는 “방역당국 대책이란 게 ‘외부와 접촉하지 말아라. 소독에 신경써라’가 전부였다. 그래놓고는 살처분한 뒤 농장주 귀책사유가 나오면 그나마 최대 80%인 보상도 깎는다. 생계대책은 언급조차 없다”고 분개했다.
전국 곳곳에 설치된 거점방역소에서 근무하는 방역요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업무에 지쳐 있다. 차량소독을 두고 수시로 벌어지는 실랑이는 방역요원들을 더욱 지치게 한다.
한 방역요원은 “유리창에 소독약을 뿌리려고 하니, 운전기사가 겨울이라 얼어붙어 앞이 안보일 수 있다고 막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AI는 사상 최악의 피해를 기록, 향후 보상과정에서 정부·지자체와 농장주 간 마찰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일례로 세종시의 경우 230개 농가에서 사육하던 450만수의 가금류 중 AI 감염으로 126만수가 살처분됐다. 또한 예방차원에서 살처분한 가금류도 25만 5000수나 된다.
윤석기 세종시 산림축산과장은 “인력부족으로 방역작업과 살처분이 조기에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나중에 입식해서 키우는 과정에서 최소한 1년 정도 걸린다.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못하면 사육농가 입장에서는 생계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 고병원성 H5N6형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으로 확산 중인 가운데 충남 천안의 한 거점초소에서 방역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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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년 전인 2014년 1~7월 사이에 발병한 AI로 전국에서 1396만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올해 피해 규모는 당시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올해 바이러스 유형인 H5N6형이 항체 형성 속도보다 전염 속도가 빠른 이유도 있지만 불과 2년전 최악의 피해를 입고도 준비에 소홀했던 탓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가축전염병의 예방 및 관리를 담당해야 할 전문인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국 모든 농가의 AI를 전담하고 있는 곳은 농림식품부의 방역관리과로 과 단위에 불과하다.
최소한 청(廳) 단위 이상의 전문기관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예산과 정원 등을 이유로 해마다 반복되는 가축전염병의 관리에 대해 소극적이다.
각 지방자치단체 역시 가축전염병을 전담하고 있는 조직은 과 이하의 계 단위다. 그나마도 수의학과를 졸업한 전문인력은 1~2명 뿐이다.
농림부가 수년전부터 추진한 축사 현대화 사업도 이번 사태를 키운 요인 중 하나로 지목받고 있다. 정부는 가금류와 돼지, 소 등 축사의 현대화사업을 전개, 각 농가의 사육규모를 대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수만에서 10만수 정도 사육하던 닭과 오리 사육농가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아 수십만~수백만수의 이상의 닭과 오리를 사육하는 대규모 농가로 탈바꿈했고, 이번과 같이 고병원성 AI가 발병하자 살처분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원인이 됐다.
김영구 천안시 가축방역팀장은 “정책사업으로 축사 현대화 사업을 추진한 결과 사육 규모가 대형화됐고, 살처분해야할 가축 숫자도 많아졌다”며 “날씨가 추워지면 오리 등의 사육을 제한하는 등 사전 예방이 선행돼야 했지만 그마저도 현장에서는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AI 권위자인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가축전염병 역시 골든타임이 중요하다. 일본과 미국의 경우 가축전염병이 발병할 경우 전국에 비상체제를 가동하는 등 방역의 골든타임을 철저한 준수한 결과, 조기에 안정시킬 수 있었다”며 “고병원성 AI는 사후 처리보다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국가 차원에서 백신의 생산·보급이 실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고병원성 H5N6형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16일 충청권의 한 가금류 사육농가에서 살처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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