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TBS 찾은 감사원…단순 모니터링 or 김어준 찍어내기
by정다슬 기자
2021.04.26 11:00:10
김어준 씨 TBS 고액 출연료 논란
野 감사원 나서라 요구에 감사원 TBS 방문·관련 자료 요청
감사 대상 선정은 감사원의 권한이지만
법적 근거 없는 자료 요청도 권한 보장될지는 미지수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감사원이 김어준 씨의 출연료 논란과 관련해 공문 없이 관련 자료를 요청한 것은 정당한 감사권한 내의 행위일까, 아니면 불법 사찰일까.
김씨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가열되면서 감사원 역시 점점 태풍의 중심에 휩쓸리는 모양새다.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감사원법 제2조 1항). 그러나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한다는 감사원의 목적과 막강한 권한은 항상 감사원을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이후, 서울시의 출연기간인 교통방송(TBS)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김씨가 여당에 유리한 편파방송을 한다며 그를 퇴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관련 청원에는 32만명이 동의한 상태다. 야당 등에서도 김씨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이 가운데 김씨는 22일 감사원이 자신의 출연료 논란과 관련해 TBS를 방문했다며 “특정 정치 세력이 마음에 안 드는 진행자를 퇴출하려 하는 것 아니냐”며 “이명박정부 때 정연주 KBS 사장을 찍어내기 위해 감사원을 동원했던 것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당 소속 의원은 너나 할 것 없이 김어준 지키기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인 우원식 후보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2008년 정연주 사장을 쫓아내기 위해 KBS를 감사한 이후 1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놀랍다. 감사원이 국민의힘 하명감사 요구라도 받은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같은 주장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세 단계에서 이를 점검해봤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계속 언론 보도가 나와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고자 물어본 것이지 (감사 준비를 위한) 사전조사는 아니었다”며 “단순 모니터링이라고 언론서 이름을 붙이셨던데 (법적으로) 그런 개념 자체도 없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런 일은 아주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감사원의 직무활동이라고도 강조했다.감사원은 직무에 있어서 독립성을 가진다. 이는 곧 무엇을 감사 대상으로 삼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독립성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국회나 공익감사 청구, 국민감사 청구 등에 의해서 감사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무엇을 감사할지는 감사원이 대통령 지시사항, 국회 논의사항, 언론 보도 사항, 연구 논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국민의 관심사항을 파악하고 직접 선정한다.
이 때문에 감사원이 김씨의 출연료 논란에 대해 알아봤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서울시로부터 연간 400억여원의 예산을 지원받는 TBS가 계약서도 쓰지 않은 김씨에게 회당 200만원 상당, 5년간 약 23억원의 출연료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감사원이 감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TBS는 감사원법 규정에 따라 감사원의 회계검사 및 직무감찰 대상으로 만약 이같은 출연료 지급이 기준에 어긋나거나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았다면 이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이 해당 사안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야권의 요구에 따라 이번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야당 국회의원의 요청에 따른 최재형 감사원장의 말 한마디에 명확한 근거와 절차 없이 김어준의 퇴출을 목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감사원은 직무상 독립돼 있지만 대통령 소속이다. 감사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감사위원 역시 감사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청와대의 동의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주로 여권의 입맛에 맞춰 감사를 한다는 쪽으로 문제가 제기됐다. 지난 월성 원자력 발전소 조기폐쇄 결정 타당성 감사 등 현직 대통령에서 임명된 감사원장이 여권도 아닌 야권의 편을 든다고 비판받는 것은 이례적 일이다.
여권이 주장하는 제2의 정연주 사태 역시 이명박 정권 들어 노무현 정부 당시 임명된 KBS 사장에 의해서 이뤄졌다. 아울러 이는 시민단체의 감사 청구를 받아들여 감사원이 본격적인 감사를 한 결과 해임 요구를 한 것으로, 아직 감사조차 들어가지 않은 김씨의 사례와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TBS지부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20일 감사원 감사관은 TBS에 전화를 걸어 “김씨 출연료가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어 사실 관계를 파악해 본인이 위에 보고를 드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웬만하면 공문 없이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21일에는 TBS감사실을 방문해 TBS 관계자들과 김씨 출연료 근거 규정, 결재 서류, 최종 결정자 확인 등의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노조는 “김씨의 출연료 책정 문제가 감사원 감사 범위에 제외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이) 사태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지역 공영방송 TBS에 대한 독립성 침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공문이 없이 이같은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감사원의 직무감찰은 직무감찰규칙 등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감사원장이 지정하는 직무감찰대상기관의 장은 감사원법 제25조의 규정에 의하여 직무감찰 관련자료를 감사원에 제출하여야 한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번 문의가 감사 절차에 돌입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법과 시행령, 시행규칙에 의해서 규정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에 규정되지 않은 일상적인 감사원의 직무집행 행위 범위와 권한이 어디까지냐는 문제가 남는다.
| 최재형 감사원장이 2020년 10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안경을 만지고 있다.[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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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감사원 사정과 감사원법에 정통한 이들을 찾아 질문을 던졌다. 이들은 이 이슈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라는 점, 아울러 법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은 행위라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대다수 익명을 조건으로 답을 한 이유다. 이마저도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렸다.
어떤 이는 감사원이 정상적인 감사업무를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범위의 행위라고 했다. 경찰이 범죄를 예방하고 용의자를 잡기 위해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듯이 감사원 역시 감사업무의 효율성, 즉 선택과 집중을 위해 감사에 돌입하기 앞서 어느 정도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완전히 동일선상에서 볼 수 없지만 국정감사권을 가진 국회의원도 자료 요청권을 가진다. 대부분 정보와 이를 다루는 권한이 행정부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자료 요청권은 의원들이 행정부를 감시·견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권한이다. 이같은 자료 요청은 국감 기간뿐만 아니라 의정 활동 전반에 걸쳐 활발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이 역시 법적 근거가 불확실한 것이 현실이다.
국회법 128조에는 ‘본회의, 위원회, 소위원회는 그 의결로 안건 심의나 국정감사, 국정조사와 직접 관련된 보고, 또는 서류 등 제출을 정부·행정기관에 요구할 수 있다’고 명기돼 있는데, 적어도 소위원회 차원에서 의결이나 위원회 간사의 추진이 있어야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의원들이 행정기관에 자료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절차를 거치는 경우는 제한적이다. 대부분은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이라는 권능 아래 각 의원실의 개별적 판단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해당 기관이 자료를 제출할 의무도 없다. 실제로 각 의원실에서 소관 기관에 전산을 통해 자료를 요청하면 이에 대해 개인정보·기밀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제출을 거부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법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국감에서 각 의원실의 성패는 의원 ‘개인기’나 보좌진 ‘끈기’에 좌우된다. 집요하게 소관 기관 대관 직원을 불러 독촉하거나, 중요한 자료를 입수한 뒤 이를 지렛대 삼아 다른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국회에서 이뤄지는 실질적인 자료 요청행위에서도 회색지대가 적지 않다.
반면 다른 이는 이같은 행위가 직무권한행위 밖의 행동이라고 봤다. 효율적인 감사라는 이유로 공문도 없이 자료 제출을 요구할 경우, 이를 이유로 권한이 남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행정기관들의 합법성과 합목적성을 따지는 헌법기관이다. 본인들 역시 이 잣대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때문에 감사원이 대외적으로는 사회적 파장 등을 고려해 단순 모니터링이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사전감사 작업에 돌입했을 것이란 조심스러운 추측도 내놓았다.
공통적인 의견도 있었다. 해당 행위의 위법성을 따지는 핵심적인 요소는 김씨의 실질적인 피해 정도라는 의견이다. 의원들의 자료 요청을 원활한 의정 활동을 위한 행동으로 본다면 이같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의원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이 과정에서 다른 이의 권익이 심각하게 침해된다면 이는 용납될 수 없다. 감사원 역시 마찬가지다.
또 다른 이는 “모든 행위를 법에 모두 규정해놓을 수는 없다”면서 “다만 어떤 행위가 다른 이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 이를 항의하거나 침해된 권익을 복원할 수 있는 다양한 행정적·사법적 절차를 마련해놓았느냐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사원의 행위에 김씨가 느꼈을 불안과 불편을 표하는 것은 그에게 보장된 권리”라면서도 “이 이슈가 다시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흔들 수 있는 ‘제2의 월성’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