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지영한 기자
2004.05.07 12:14:05
현대車, 글로벌 메이커 부상..미씨비시車, 존폐의 기로
현대차, 기술도입 20여년만에 엔진 미쓰비시에 逆전수
[edaily 지영한기자] 무서운 속도로 사세확장을 하고 있는 현대자동차(005380)와 하루하루 쇠락을 거듭하고 있는 미쓰비시자동차의 운명은 한마디로 `역전드라마` 그 자체다.
과거 미쓰비시차는 엔진과 디자인분야의 앞선 기술을 바탕으로 현대차를 지도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당시 현대차는 독자기술 확보를 위해 미쓰비시차의 조그마한 기술지도에도 감사해하던 때였다.
지금은 사세 뿐만 아니라 생산규모, 품질, 기술수준 등 모든 면에서 현대차가 절대 우위에 섰다. 20여년전 전술을 전수하던 미쓰비시차가 이제는 현대차의 엔진기술을 로얄티를 주고 사들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역전 드라마 치고도 너무나 극적인 엇갈림이다.
◇미쓰비시차, 한때 `현대차의 스승`
연혁면에서 현대차는 미쓰비시차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일천하다. 미쓰비시차는 지난 70년 미쓰비시중공업에서 독립, 회사로서의 미쓰비시차 역사는 67년에 출범한 현대차보다 젊다.
그러나 미쓰비시차는 1870년 창업한 쓰쿠모상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일본최고(最古)의 자동차 메이커다. 이미 1917년에 피아트를 모델로 한 일본의 첫 양산차인 `모델A`를 만들어냈다.
1959년엔 `미쓰비시50`을 시작으로 독자모델을 갖게 됐고 70년대엔 경승용차인 미니카에서부터 한국에 그랜저로도 도입된 대형 고급승용차 데보네르(Debonair)에 이르기까지 풀라인업을 구축, 종합자동차 메이커로 변신했다. 90년대엔 휘발유 직분사엔진(GDI)을 세계 처음으로 실용화했다.
미쓰비시차는 이미 79년에 연간 생산규모가 100만대를 돌파했다. 당시 현대차의 생산대수가 7만1000대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두 회사의 외형이 크게 비교된다.
현대차의 경우엔 회사가 출발한지 근 20년이 흐른 지난 86년에야 누적 생산대수가 100만대를 넘어설 수 있었다. 연산 100만대를 넘어선 것은 지난 95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현대차-미쓰비시차, 73년부터 제휴..82년엔 자본제휴까지
이처럼 과거 양사간의 격차는 엄청났다. 현대차로선 미쓰비시차가 본받아야할 선진 모델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 현대차가 2010년 글로벌 톱5를 노릴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이같은 배경에는 과거 미쓰비시차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양사를 말할 때 `사제(師弟)관계`란 말이 감초처럼 등장하는 이유이다.
현대차와 미쓰비시차의 제휴역사는 70년대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차의 초기 제휴선은 유럽계였지만 73년 가솔린엔진·변속기·후차축 제조를 위한 기술협조 계약을 체결하면서 미쓰비시차와 첫 인연을 맺었다.
81년엔 양사가 기술제휴를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이듬해인 82년4월 미쓰비시차와 미쓰비시상사는 현대차 지분을 각각 5%씩 매입, 미쓰비시차와 현대차는 자본제휴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83년엔 시리우스 엔진·변속기 계약이, 85년엔 L카(그랜저) 관련 계약도 체결됐으며 90년대엔 미쓰비시차의 `파제로`와 `샤라오`가 국내에 각각 갤로퍼와 싼타모로 도입돼 히트를 치기도 했다.
특히 현대차는 70년대 미쓰비시의 엔진기술을 전수받아 독자모델인 포니를 개발했고, 현재 미국 수출용 쏘나타에 탑재된 시리우스엔진이나 양사가 공동개발한 에쿠스에도 여전히 미쓰비시차의 흔적이 남아있다.
◇현대차, 글로벌 확장전략 순항..미쓰비시차, 생사기로에
지금은 사정이 너무나 달라졌다. 현대차가 차세대 글로벌 플레이어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미쓰비시차는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자금지원이 돌연 취소됨에 따라 법정관리로 가느냐 마느냐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