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정부 지원 받은 조원태…대한항공 정상화하고 리더십 증명할까
by송승현 기자
2020.04.26 17:03:31
1년만 경영권 분쟁 이어 코로나19로 `첩첩산중`
정부 1조2000억원 지원…영구채 전환 시 10.8% 지분
"개입 없다" 선 그었지만, 리스크 극복 절실
"한진해운 반면교사 삼아야"…강도 높은 자구책 전망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한진그룹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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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고(故)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이어받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다. 길지 않은 1년 동안 조 회장은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003490) 부사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인 데 이어 취임 1주년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정부 지원의 손길을 받는 등 어려움에 처해있다.
재계에서는 코로나19로 대한항공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한 지금 조 회장이 자신의 리더십을 증명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조 전 부사장을 필두로 한 3자연합이 여전히 경영권을 노리고 있는 만큼 대한항공의 경영정상화 여부가 조 회장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평가다.
26일 한진그룹에 따르면 조 회장은 지난 24일 취임 1주년을 맞았다. 다만 한진그룹은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가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한 만큼 특별한 기념행사 없이 위기 극복에만 집중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4월 8일 조양호 전 회장이 별세한 후 같은 달 24일 회장으로 선임됐다. ‘조원태의 한진그룹’은 1년간 다사다난했다. 초기에는 땅콩회황 사건과 물컵 갑질 등으로 추락한 기업이미지 회복을 위해 ‘직원만족경영’과 ‘소통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며 내부 분위기를 다잡는 데 집중했다. 이어 지난해 6월 서울에서 개최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서울 연차총회의 의장으로 행사를 무리 없이 치러내면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이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일명 강성부 펀드), 반도건설과 3자 연합을 결성해 조 회장 퇴진과 전문경영인제 도입을 요구하며 경영권을 위협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약 3개월간 이어진 경영권 분쟁에서 조 회장은 사내이사 연임과 더불어 추천한 사외이사가 전부 선임되면서 완승을 거뒀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여객 매출 중 90%를 차지하는 국제선이 셧다운 되자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리는 등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 조 회장의 역발상으로 여객기를 화물 전용기로 사용하면서 물류 전문지 ‘에어 카고 월드’로부터 최고 등급인 ‘다이아몬드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위기 극복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쏟아붇고 있지만, 매월 4000억원 규모의 고정비용 발생 등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다.
| 24일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의 코로나19로 비행하지 못하는 대한항공 여객기가 대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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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회장 취임 1주년 날에 정부가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을 긴급 지원하면서 다행히 유동성 위기에서는 한시름 던 상태다. 다만 이 가운데 3000억원이 영구채 인수라는 점은 불안요소다. 지난해 말 기준 대한항공의 지분은 최대 주주인 한진칼과 특수관계인이 33.34%, 이어 국민연금이 11.50%를 보유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만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10.8% 정도를 확보할 수 있어 대한항공 지분에서 정부 측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원 발표 직후 공개한 서한에서 “기업 가치가 상승하는 경우 이익을 국민과 공유하기 위한 것일 뿐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데 이어 청와대도 이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차원일 뿐 기업 경영 개입의사는 없다고 분명히 했지만, 경영권 분쟁을 겪은 조 회장 입장에서는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재계에서는 조 회장이 한진해운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국 원양 해운업의 시초인 한진해운은 글로벌 해운업 장기침체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 2017년초 파산의 길을 걸었다. 당시 한진해운 파산에는 채권단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자구안과 정부 및 주채권은행인 산은과의 소통 부재가 원인으로 꼽힌다.
이번에도 정부는 자금을 지원하면서도 대한항공의 자구책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은 조만간 강도 높은 자구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조 회장은 한진칼(180640) 주총 이후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뼈를 깎는 자구 노력도 병행할 것”이라며 “송현동 부지 등 유휴자산 매각과 더불어 이사회와 협의해 추가적인 자본 확충 등으로 회사의 체질을 한층 더 강화하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한항공 소유 서울 종로구 송현동 토지(3만6642㎡) 및 건물(605㎡)과 해양레저시설 ‘왕산마리나’ 운영사 왕산레저개발 지분 등 유휴자산을 매각해 1조원 규모의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위기 극복을 위한 자산 매각에 속도가 붙었다. 한진(002320)은 지난 21일 롯데렌탈에 렌터카 300여대를 600억원에 매각했다. 또 대한항공은 400억원 규모의 제주도 사원 주택을 매각한데 이어 미국 로스앤젤레스 윌셔그랜드센터와 그랜드 하얏트 인천 호텔 등도 유동성 확보를 위한 매각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조 회장의 경영능력을 볼 수 있는 때”이라며 “강도 높은 자구책으로 향후 정부의 지분 전환에 따른 리스크를 해소하고, 정부와의 원활한 소통 창구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