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 뒤, 발레 무용수의 '찐 모습' 보고 왔습니다[알쓸공소]

by장병호 기자
2024.06.07 13:00:00

유니버설발레단 ''더 발레리나''
발레 무용수 일상 담은 이색 작품
브이로그처럼 친숙하게 담은 발레 매력
빛나는 순간 위해 노력하는 예술과 삶

‘알쓸공소’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공연 소식’의 줄임말입니다. 공연과 관련해 여러분이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는, 혹은 재밌는 소식과 정보를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유니버설발레단 ‘더 발레리나’의 한 장면. 연습실로 꾸민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이 실제 연습 현장을 공연으로 선보이고 있다. (사진=유니버설발레단)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공연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없으신가요. 무대가 아닌 연습실과 대기실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지고는 하는데요. 최근 발레 무용수들의 무대 바깥 ‘찐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공연을 한 편 봤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 ‘더 발레리나’입니다.

‘더 발레리나’는 2022년 초연한 작품인데요. 서울 공연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14회 대한민국발레축제 공식 초청작으로 지난달 31일과 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했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더 발레리나’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순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발레 무용수들의 일상을 현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 감이 잡히지 않는 설명처럼, 공연 또한 시작 전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발레 연습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무대가 관객을 반깁니다. 공연 시작 5~10분 전부터 무용수들이 한 명씩 무대 위 문을 열고 들어와 몸을 풀기 시작합니다.

유니버설발레단 ‘더 발레리나’의 한 장면. 주역 무용수 역 홍향기가 연습 도중 부상을 당한 모습을 연기하고 있다. (사진=유니버설발레단)
공연이 시작하면 뮤지컬배우처럼 마이크를 착용한 ‘발레마스터’ 역의 무용수가 등장해 실제 연습처럼 무용수들을 지도하기 시작합니다. 연습을 실제 공연처럼 선보이는 무용수들의 모습을 넋을 놓고 보게 되는데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습이 본 공연 하루 전날 진행 중인 마지막 연습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더 발레리나’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순조롭게 흘러가던 연습은 그러나 주역 무용수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긴장에 휩싸입니다. 부상 장면은 공연을 위한 연기임에도 보는 것만으로 아찔합니다. 실제로 많은 무용수가 연습 도중 이처럼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부상을 당하겠죠. 발레 마스터는 주역 무용수의 부상으로 공연 프로그램 변경을 결정하려고 합니다. 그때 주역의 꿈을 키워온 신인 무용수가 용기를 내 손을 들죠. 언젠가 주역이 되기 위해 열심히 갈고 닦아온 자신의 실력을 발레 마스터 앞에서 당당히 보여줍니다. 새로운 주역이 탄생하는 순간, 모든 무용수가 하나가 돼 신인 무용수를 축하해줍니다.



유니버설발레단 ‘더 발레리나’의 한 장면. 신인 무용수 역을 맡은 한상이가 주역을 맡게 된 뒤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유니버설발레단)
여기까지가 ‘더 발레리나’의 1부입니다. 이어지는 2부는 놀랍게도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의 ‘깜짝 출연’으로 시작하는데요.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문훈숙 단장의 작품 해설 시간입니다. 그제야 ‘더 발레리나’가 한편의 다큐멘터리, 또는 브이로그처럼 발레의 매력을 담은 작품임을 알게 됐습니다.

작품 해설이 끝나면 4편의 발레 소품 공연이 이어집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에 안무한 ‘파가니니 랩소디’, 미국 작곡가 맥도웰의 음악을 이용한 ‘맥도웰 피아노 협주곡 2인무’, 그리고 올해 초 ‘코리안 이모션 정(情)’을 통해 선보이기도 한 한국적 창작발레 ‘미리내길’과 ‘비연’ 등인데요. 유병헌 예술감독이 직접 안무한 작품들입니다.

유병헌 예술감독은 “‘더 발레리나’는 단원들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가지고 오랜 시간 심사숙고 끝에 만든 작품”이라며 “무대 위에서 아름답게 빛날 순간을 위해 무용수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연습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발레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담고자 노력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말처럼 ‘더 발레리나’는 발레라는 예술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유니버설발레단 ‘더 발레리나’ 중 ‘파가니니 랩소디’의 한 장면. (사진=유니버설발레단)
특히 ‘파가니니 랩소디’와 ‘맥도웰 피아노 협주곡 2인무’ 장면에선 무대 한 편을 무대 바깥 백스테이지로 표현하는데요. 부상을 당한 주역 무용수가 신인 무용수의 공연을 이곳에서 지켜보는데요. 공연을 무사히 마친 신인 무용수에게 주역 무용수가 꽃을 건네며 축하하는 장면은 뭉클했습니다.

작품의 마지막은 다시 연습실입니다.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빛났던 무용수들은 다시 연습실로 돌아와 평소처럼 몸을 풀고 연습을 이어갑니다. 무용수들의 부단한 노력이 무대에서 빛나듯, 우리의 삶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빛나는 순간을 찾게 되는 것 아닐까요. 예술을 넘어 삶까지 돌아보게 하는 작품, ‘더 발레리나’였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 ‘더 발레리나’ 중 ‘비연’의 한 장면. (사진=유니버설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