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 공포…재난영화 방불케 하는 650만 피난 행렬

by방성훈 기자
2017.09.10 15:27:41

650만명에 대피령…차량·항공 등 피난 행렬 이어져
공항 혼란 속 '바가지요금' 논란…항공사, 요금 상한 설정
병원·요양원 환자 다른 곳으로 이송…돌고래·경주마 등도 피신
오렌지 농장 20% 타격…'어마' 피해 예상액 최대 283조원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식료품 가게엔 물과 통조림이 모두 동이 났다. 재난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차량 피난 행렬이 이어졌고, 주유소엔 기름을 채우려는 차량들이 줄을 섰다. 나무 판자로 창문을 틀어막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항들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바가지요금 논란에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다. 병원과 요양원 및 양로원이 환자들을 철수시켰고, 돌고래와 경주마 등 동물들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9일(현지시간) 허리케인 ‘어마’가 미국 플로리다반도 남서부에 접근하면서 연출된 풍경이다. 이미 카리브해와 쿠바를 거치면서 최소 25명의 사망자를 낸 어마는 뉴욕시간으로 오후 11시 키스 제도 남동쪽 145km 떨어진 해상에서 플로리다를 향해 북진 중이다. 미 국립허리케인센터는 어마가 당초 예상과는 달리 10일 오전 플로리다 반도 키스제도에 도착한 뒤 해안을 따라 템파 방향으로 북상할 것으로 관측했다.

이에 따라 정확한 본토 상륙지점은 마이애미가 아닌 템파가 될 전망이다. 템파는 지난 100년 동안 대형 허리케인을 직접 맞이한 적이 없는 곳이다. 어마는 현재 최대 풍속 193km의 3등급 허리케인으로 약해진 상태지만 새벽에 다시 5등급으로 격상될 수 있어 미 기상당국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11일 오전엔 템파 지역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해 강풍에 따른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플로리다 주정부는 남부와 중부 지역 650만 주민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주정부는 현재까지 약 400여개의 대피소를 마련했으며 이날 밤에 더 많은 대피소를 열겠다고 밝혔다. 환자들을 위한 특별 대피소도 61개 마련했다. 조지아주는 해안 지역 54만명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노스 캐롤라이나와 사우스 캐롤라이나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각 대피소에는 전날부터 간단한 침구류와 귀중품만을 챙겨 든 주민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로 가득찬 플로리다주 공항들에선 항공사들이 승객들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우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플로리다주 법무장관실에 제기된 민원만 7000건이 넘었다. 일부 항공편은 일반석이 1000달러를 넘었으며, 1등석은 2000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비난이 폭주하자 일부 국회의원들은 미 교통부에 조사를 촉구했고, 교통부는 항공사들이 재난을 돈벌이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단속에 나섰다.

항공사들은 갑자기 수요가 급증해 요금이 인상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바가지요금을 씌운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플로리다에서 출발하는 편도 항공요금의 상한을 설정하겠다고 밝혔다. 아메리칸에어라인은 일반석 99달러, 1등석 199달러로 상한을 책정했다. 다시 돌아오는 플로리다 주민들을 위해 왕복 티켓의 경우 오는 17일까지 더 낮은 요금을 적용하기로 했다. 젯블루항공과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등은 오는 13일까지 편도 요금을 최고 399달러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플로리다주 주민들이 9일(현지시간) 허리케인 ‘어마’ 상륙에 앞서 창문에 합판을 설치하고 있다. (사진=AFP PHOTO)
플로리다 병원협회는 29개 병원과 300여개의 요양원 및 양로원이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피난시켰다. 또 환자들를 위한 특별 대피소에 1000여명의 간호사를 배치하기로 했다. 현재 특별 대피소에는 5000여명이 수용돼 있다.



돌고래 5마리와 경주마 수백마리 등 주요 동물들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플로리다에 있는 수족관 ‘돌핀 디스커버리’의 수컷 돌고래 5마리는 어마 상륙에 앞서 플로리다 중부 올랜도의 테마파크 ‘시월드’로 대피했다. 쿠바에서도 어마가 지나는 북부 지역 수족관 돌고래들이 비행기를 타고 남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또 마이애미 인근 경주마 수백 마리는 북쪽에 있는 다른 훈련 시설과 마구간으로 옮겨졌다.

피난민들을 위한 구호물자와 자원봉사 등 따뜻한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플로리다주 대피소엔 다른 주에 거주하는 의사와 간호사, 자원봉사자 등 수천명이 손을 빌려주겠다는 뜻을 전해오고 있다. 세계적인 맥주 제조업체 안호이저-부시는 플로리다주 동해안 포트피어스와 서해안 새라소타, 중부 올랜도에 식수 31만캔을 전달했다.

움직일 수 없는 오렌지 농장은 어쩔 수 없이 강풍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될 전망이다. 플로리다는 브라질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오렌지주스를 생산하는 곳이다. 어마가 예측 경로대로 이동할 경우 감귤 농장의 20%, 약 5분의 1이 풍비박산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외에도 주에서 가장 큰 발전소가 피해를 입게 되면 440만 주민이 전기를 공급받지 못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어마가 당초 예상과 달리 템파 쪽으로 경로가 바뀌면서 피해 예상액도 늘어날 전망이다. 엔키리서치의 척 왓슨은 ‘부수적인’ 경제적 손실까지 포함해 어마에 따른 피해액을 당초 1200억달러(약 136조원)에서 2000억달러(약 226조원)로 추정했다. 하지만 템파 지역 피해까지 더해지면 최대 2500억달러(약 283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시속 230km의 돌풍을 동반한 4등급 허리케인 ‘호세’도 카리브해 북단 리워드제도 북쪽 해상을 이동 중이다. 다만 호세는 10일 이후 위력이 약화되고 이동방향도 바뀔 것으로 보여 미국엔 큰 피해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인근의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내각을 소집해 허리케인 어마와 호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이재민들의 안위와 조속한 피해 복구를 기원하고, 어마의 예상 경로에 속한 주민들이 관계 당국의 지시를 잘 따라줄 것을 당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산은 대신할 수 있지만 목숨은 그렇지 않다. 안전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며 “재산은 걱정 말고 어서 대피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