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와 안개 따라 갔더니 한 폭의 그림이 되었네''

by조선일보 기자
2006.07.20 13:10:16

백은하의 여행에서 만난 디자인-춘천

[조선일보 제공] 춘천은 간결하고 부드럽다. 물과 산이 부드럽게 조우하는 춘천의 정서를 만나려면 호수를 따라 달려봐야 한다.

우리나라를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 서울에 이어 내가 꼭 보여주고자 하는 도시가 춘천이며, 춘천에 소시적 한 번 와 봤다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는 곳이 의암호 따라 가는 길이다.

춘천에서 당신이 정말 해야 할 일은 닭갈비 시식만은 아니다.

아슴아슴 떠오르는 안개와 호수, 그리고 산의 조화를 돌아봐야만 한다. 그게 춘천이다.

물과 산이 연이어진 춘천 가는 길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 할 만큼 아름답다.

경강대교 지날 즈음 창 밖 풍경을 보며 나는 내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아름다운 풍경을 눈 앞에 담고 있다우."





의암호 순환도로(의암댐~춘천댐 403번 지방도로)를 달리다 보면 ‘아 이게 춘천이로구나!’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사이로 안개라도 피어오르는 날이면 가슴이 쿵쿵댄다. 호수 위에 싯구처럼 점점이 떠있는 강태공들의 좌대(물 위에 배처럼 떠 있는)도 그 나름 멋진 풍경이 된다. 호수를 향해 난 카페나 음식점에서 이 서정적인 디자인을 내려다볼 수 있다.





삼악산에 흰 돌멩이처럼 박혀있는 한 채의 산장. 어떻게 저 산에다가 뭐 하나 심은 듯 자리를 잡았을까. 등선폭포 쪽에서 시작해 삼악산을 다 넘고 하산할 즈음, 고생한 보람으로 이 산장(‘삼악산장’·033-243-8112)에 들러 라면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의암호를 내려다보면, 행복하다,라는 말이 휘파람처럼 나온다.







서면뱃터에 서서 강을 바라보는 아가씨와 저기 낚시하러 가는 사람들. 2000년 신매대교가 생기면서 더 이상 배가 뜨지 않아 지금은 옛 뱃터의 정취만 남아있다. 예전엔 이곳 농민들이 아침마다 농작물을 리어카에 실어 배에 싣고 나가 도시 사람들에게 팔고 돌아오곤 했다.




그림 솜씨가 세련되진 않지만, 오미나루터를 중심으로 소박하게 주변을 그려낸 이 그림지도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림지도를 만들어낸 그 마음이 정말 예쁜 디자인. 인공적인 디자인은 뭣보다 주변 환경과 잘 어울려야 한다. 여기 농촌 풍경과 저 소담한 강에 어울리는 이 지도야말로 멋진 본보기. 오미 나루터 느티나무는 큰 버섯처럼 불쑥 솟았다. 실낱 같은 길 위에 솟아오른 엉뚱하고 유쾌한 디자인. 춘천에서 가장 다정한 산책길 중 하나. 가까이에 있는 카페(‘미스타페오’·033-243-3989)에서 차 한 잔하며 저녁노을을 봐도 좋다.






서면 신매리의 카페 지붕 위에 올려진 새와 거두리에서 본 창의적인 우체통. 석유통이 재치 있고 검박한 사람 손에서 우체통으로 변신.





아기 볼처럼 발갛게 부풀어오른 복숭아 좀 보라지. 척박하게 고단하게 과일을 디자인 손, 그 손으로 자녀들을 박사로 만든 사람들이 산다. 이곳이 그 유명한 박사마을. 한 손엔 복숭아, 또 한 손엔 옥수수… 토속적인 길을 토속적인 먹거리와 함께 달린다. 울랄라. 서면 길가를 따라가다 보면 천막을 치고 옥수수를 삶아서 파는 아주머니들을 만나게 된다. 내 입에서 찰찰찰, 이거야말로 어린 시절 먹던 햇옥수수다. 냉동 옥수수가 아닌 저 밭에서 나온 춘천 옥시기가 여기에! 냄새며 맛, 이보다 더 구수한 디자인은 없다네. 큰 놈 하나에 1000원.





의암호를 일주하고 시내로 나가게 되면, 동부시장 샬롬분식(시장 안, 큰 메리야스 가게 건너편)에 가서, 커트머리(검은 염색) 할머니에게 강원도 감자떡과 촌떡을 사야 한다. 뜨거운 감자떡은 입 안에서 쫄깃하고 달작하며, 촌떡은 매콤하다. 촌떡은 메밀을 동그랗게 부친 후 그 속에 매운 무채를 넣고 돌돌 말아서 구워낸다. 그 맛이며, 돌돌 말은 모양이며, 노릇한 냄새며, 할머니의 분위기며, 착한 가격까지, 여러모로 가장 완성도 높은 디자인이다. 때론 그게 먹고 싶어서 기차를 타기도 하니, 중독성이 있는 디자인이 아닌가. (조선일보 미술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