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인경 기자
2018.01.21 15:14:15
알리바바·화웨이·하이크비전 잇따라 미국 정부로부터 퇴짜
中 “미국 정부 행동 거리낌없어”…미 국채 매각설도 나와
“美, 대중 무역 불균형 분노…중간선거 앞두고 무역전쟁 우려 고조”
[베이징= 이데일리 김인경 특파원] “(무역전쟁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고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무역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을 했다. 이어 중국에 지적 재산권 침해 행위에 대규모 벌금을 물릴 것이라며 그 규모를 “상상도 못 해봤을 수치”라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말한 ‘벌금’의 의미가 무엇인진 분명하지 않다. 다만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해 중국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거나 다른 무역 제재 등 ‘실질적인 행동’을 보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지난 2016년부터 대중 공세를 퍼부었다. 하지만 올해 미·중 무역 갈등은 심상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연두교서(상하원 합동연설)에서 그 내용을 밝히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중국도 단단히 맞서고 있다. 가오펑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당일 “미국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우리는 중국의 합법적인 권익을 단호히 옹호하겠다”고 맞받아쳤다.
미·중의 신경전은 새해 벽두부터 시작됐다. 지난 3일 중국 IT 공룡 알리바바는 미국 금융회사 머니그램 인수합병(M&A)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알리바바는 금융자회사 앤트파이낸셜의 디지털 결제 시장 확대를 위해 머니그램 M&A에 1년간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중국 기업이 미국 국민의 개인 정보를 얻었을 때 사이버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난색을 보였고 결국 알리바바는 계획 자체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이어 일주일 채 되지 않은 9일, 중국 제조업체 화웨이의 미국 시장 진출이 무산됐다. 미국 진출을 위해 미국 인기 여배우 갤 가돗을 최고경영책임자로 영입하고 미국인에게 ‘화웨이’란 발음을 친숙하게 하기 위해 와웨이(Wow Way)라는 옥외 광고판까지 내걸며 미국시장에 공들였던 화웨이다. 특히 미국에 내놓으려 했던 스마트폰 ‘메이트10’은 화웨이의 현재 기술이 모두 투입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화웨이의 스마트폰을 팔기로 한 미국 이동통신사 AT&T는 양사의 발표 몇 시간을 앞두고 계획을 철회했다.미국 언론들은 AT&T가 돌연 화웨이와의 계약을 파기한 배경엔 미국 의회의 압박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의원들은 화웨이가 생산한 장비가 ‘스파이 활동’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AT&T를 압박했고 결국 AT&T도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화웨이 측은 증명되지 않은 소문을 바탕으로 정부가 민간 기업에 압력을 넣어 계약을 무산시킨 것에 반발했고 리처드 유 화웨이 최고경영자(CEO)는 세계 최대 국제 가전쇼 CES2018 기조연설에서 미국의 결정을 비난하기도 했다.
여기에 미국 미주리주 육군은 세계 1위 감시 카메라 업체인 중국 하이크비전이 제조한 감시 카메라 5대를 다른 제조업체의 것으로 교체해 문제가 됐다. 하이크비전은 프랑스 공항이나 아일랜드 항구, 아프가니스탄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 등에도 제품을 공급했지만 보안성으로 문제가 제기된 적은 없다고 항변했다.
미국은 이 세 가지 사태에 대해 국가 안보를 위한다는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올 들어 유독 이 같은 조치가 이어지는 게 석연치 않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정부가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중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중국 기업들의 계약까지 관여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의 중국기업 제동은 안보 외의 영역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미국 무역대표부는 타오바오가 지식재산권 침해 상품을 판매한다며 2016년에 이어 지난해 악덕 시장 명단에도 포함했다. 마이크 에번스 알리바바 총재는 “지난해 23만 개의 타오바오 내 상점이 (지적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문을 닫았고 짝퉁상품을 내리라는 요구도 2016년보다 25% 줄었다”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 항변했다.
중국 무역에 대한 미국의 불만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뿌리 깊은 무역 적자를 바로 잡고 일자리를 되찾아 오겠다고 중국을 겨냥한 바 있다.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개인별장에서 회담을 열고 무역 불균형 시정을 위한 100일 조치에 합의를 했고 이어 11월엔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대규모 투자무역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중국이 미국과 사상 최대 무역 흑자를 내자 트럼프 대통령이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중국 해관총서(관세청)에 따르면 중국의 2017년 무역흑자는 전년 대비 17% 줄었지만 미국에 대한 무역흑자는 10% 증가한 2758억달러로 종전 최고치인 2015년의 2610억달러를 넘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지난 16일 새해 첫 전화 통화를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상당 시간을 무역 불균형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 직후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중국 무역적자가 지속해서 증가해온 데 대해 실망감을 표하고 이 상황이 이대로 이어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미국은 올해 11월 중간선거도 앞두고 있다. 하원 전원과 상원 100명 중 33명을 새로 선출하는 올해 중간선거에선 민주당이 크게 앞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공화당을 이끄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중간선거 판세를 뒤집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며 대중국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중국 내에서도 중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중국 관영 매체 신화통신은 중국과 미국의 긴장 조절이 필요하다며 미국이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중국 역시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산 농산물 검역 강화를 통한 수입 억제,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제소 등으로 미국의 공세에 맞선 후, 최악의 경우 미국 국채 던지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기준 미국 국채 1조1982억달러어치를 가지고 있는 미국채 보유 세계 1위 국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양국간 정치 경제적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며 “미중무역 전쟁은 올해 가장 큰 폭발력을 지닌 이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목표를 내걸고 자국 우선주의를 펴는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꿈(中國夢)’을 강조하며 G2에 걸맞는 위치에 오르려는 시 주석의 야망이 충돌하는 만큼 미중 대결 양상은 더욱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