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나의 펀드수첩]`투자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by최한나 기자
2011.09.08 13:34:02

한동안 소외됐던 가치주펀드, 최근 조정장서 `반짝반짝`
덜 오른 종목 사서 꾹 참고 기다리기..`투자의 정석대로`

[이데일리 최한나 기자] 주식 투자자라면 누구나 일확천금의 꿈이 있을 겁니다. `모두가 그렇다고 해도 나는 절대 안 그래`라고 말하는 투자자일라도 마음 속 어딘가 깊숙하고 은밀한 곳에는, 다만 아주 약간이라도 `내가 산 종목이 다른 종목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올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분명 숨어있을 겁니다.

그런데 원래 주식 투자의 기본은 기초체력 좋은 종목을 가급적 싼 값에 사서 장기간 묻어뒀다가 좀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 때 팔아서 수익을 남기는 것입니다. 단기간에 많은 돈을 한꺼번에 벌고 싶은 욕망과는 거리가 있지요.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투자자들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이만하면 충분히 싸다 싶어 샀는데 그 이후 가열차게 빠지는가 하면 이만큼 올랐으니 팔아도 되겠다 싶어서 팔았는데 그 이후 더 가파르게 오르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개인 투자자로서는 들어가고 나가는 시점을 분명히 알기가 북극에서 냉장고 팔기보다도 어렵습니다.

언제 사고 언제 팔아야 할지 통 감이 오지 않는다거나 주식을 한번 샀다하면 얼른 팔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는 분들에게 가치주 펀드를 추천합니다.

일반적으로 펀드는 앞으로 오를 것 같은 종목을 사서 실제 올랐을 때 팔아 수익을 남깁니다. 모멘텀 투자라고 부릅니다.

가치주 펀드는 덜 오른 종목을 사는 것이 핵심입니다. 주로 주가수익배율(PER)이나 주가순자산배율(PBR)과 같은 밸류에이션 지표가 활용됩니다. 즉 내는 이익이나 들고 있는 자산에 비해 심하게 싸게 거래되고 있는 종목을 골라냅니다. 그리고 제 가치만큼 오르면 팔아서 수익을 얻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올 상반기까지는 가치주 펀드의 암흑기였습니다. 금융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물러가고 경기가 회복되면서 움츠리고 있던 국내 기업들이 기지개를 활짝 폈습니다. 주요 기업들은 분기마다 사상 최대 이익을 냈습니다. 성장주를 담는 펀드들은 줄줄이 높은 수익으로 투자자들을 웃게 했습니다.

기업의 성장성보다는 가치 대비 저평가 정도를 종목 선정의 기준으로 삼는 가치주 펀드는 철저히 소외됐습니다. 가치투자를 주로 하는 한 운용사 관계자는 "지수가 아무리 올라도 기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최근 가치주 펀드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이후 가파른 조정장세가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지난달초 조정은 정말 무시무시했지요. 하루에 100포인트 넘게 빠지는 날도 있었고, 장중 1700선이 무너진 날도 있었습니다. 대형주를 압축적으로 쓸어담았던 펀드들의 수익률은 그야말로 가을바람에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가치주 펀드는 달랐습니다. 거친 조정장에서 꿋꿋하게 버텼습니다. 최근 한달간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은 평균 -8.5%대에 달하지만, 가치주 펀드는 -6%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사정없이 출렁이는 장세에서 상대적으로 선방한 셈입니다.

▲ 주요 가치주 펀드 수익률(%)


다른 어떤 것보다 기업가치에만 집중하는 투자방식이 주효했습니다. 경기나 시장 상황에 민감하지 않은 종목을 담아 장기간 보유하는 우직함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죠.

좀 더 큰 그림에서는, 극단적으로 말해 성장주 시대가 저물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제까지 한국 경제는 이른바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 범주에 속하며 고속페달을 밟아왔지만, 이미 선진형 경제(developed country)에 접근한 지금은 예전과 같은 고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느 때보다 강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성과가 주가를 계속 끌어올릴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치주 펀드를 포트폴리오에 포함시켜야 할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지난 2년간 성장주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고 사이클상 쉬어갈 때가 됐다고 본다면, 이제는 상대적으로 가치주가 부각될 만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언제 들어가고 언제 빠져나와야 할지 아리송하다면 앞으로 더 오를 종목보다 그동안 덜 오른 종목 골라내기에 주력하는 가치주 펀드가 딱입니다. 원래 받아야 할 만큼 몸 값을 받지 못하고 있는 종목이라면, 그리고 경제가 정상적인 상황을 유지한다면, 언젠가는 제 값을 회복하게 될테니까요.

투자자들이 할 일은 그저 신중하게 골라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 뿐입니다. 물론 기다리는 중에 성장주 펀드가 치고 나가더라도 배아파하면 안된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