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문주용 기자
2005.03.18 14:45:00
[edaily 문주용기자] 요즘도 인기가 꽤 있는 한 방송국의 `TV쇼 진품명품`이라는 프로그램이 첫 방송을 탔을 때의 일이다. TV에서 이런 `골동품`가치를 평가하는 프로는 처음인지라 눈길이 갔지만, 과연 어떤 물건들이 나올까 몹시 궁금했다. 특히 민간이 장롱에 꼭꼭 숨겨놓고 있는 것중에는 국보급도 있으리라는 호기심이 크게 동했다.
방송 제작자가 방송 초기에 신경을 많이 쓴 탓인지, 선보인 물건들이 가히 `물건`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어렴풋한 기억에도, 김좌진 장군의 어떤 물건을 그의 친손녀, 김을동씨가 갖고 나온 것 같고, 김구 선생과 관련된 물건도 누군가가 내보였던 듯하다.
대부분 이들 물건들은 예술적 가치, 보관 가치보다는 역사의미적 가치(시대적 평가가치라 할까)가 더 큰 것들이었던 것같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 프로를 보던 기자로선, 그 물건들의 값이 얼마로 평가될지가 궁금했다. 예술적 가치등을 평가하는데 익숙한 감정 전문가들이 이런 역사적 물건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할지에 관심이 끌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나라 최고급의 이들 감정 전문가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값 매김을 포기하는게 아닌가. 그게 아니면, 도저히 `사고 파는데` 기준이 될 수 없을만큼 큰 금액을 가격으로 제시하는게 아닌가.
감정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런 분들의 물품을 감히 저희들이 어떻게 가격을 매기겠습니까"라며 값 매김 자체가 매우 불경스러운 짓인양 겸손을 떨었다.
이런 내용으로 한두번 더 방송된 후 그 프로그램은 냉정해졌다. 역사의미적 가치가 큰 물건을 가급적 피하고, 값매김이 쉬운 작품들을 선보였고, 가격도 거품을 쫙 빼고 현실적인 가격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라면 시장의 평가자들은 평가를 회피해서는 안된다. 사고 팔때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에 누구나 전문가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평가를 회피하거나, 엉뚱한 이유로 평가를 왜곡하는 것은 평가자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한덕수 경제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취임했다. 일주일간의 신중한 검증을 거친 것치고는 시장이 그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웬만한 사람이라면 `나는 이런 사람이다`고 나설 법한데, 한 부총리는 아예 이헌재 前부총리 뒤로 숨어버린 느낌이다. 아니 노무현 대통령 뒤로 숨은 것일까.
그는 경제부총리가 되자마자 "이헌재 前부총리때부터 추진한 정책에 일체 변화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부총리가 바뀐 것은 전임자가 잘못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인사권자의 의중을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까지 소개했다.
한 부총리는 이어 재경부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40만개 일자리와 5% 성장 등을 위해 유가상승과 환율움직임을 면밀히 점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신용불량자 문제 개선, 중소기업 등 금융불안제거, 부동산 투기 차단, 임대주택 공급확대, 빈곤층 의료확대와 생활보호대책 강화 등에 주력하고 "이 과정에서 정책의 현실 적합성과 효과를 높이기 위해 현장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겠다는 것 정도가 다를까, 나머지는 모두 이 前부총리의 정책을 나열인 셈이다. 정책목표를 제시했지만 이들중에 자신의 경제철학에 바탕한 정책우선순위는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정책목표는 그렇다치더라도 금융, 외환 등 다른 거시적 정책은 어떻게 펴나가겠다는지도 불명확하다.
예컨대 이 前부총리가 신봉해온 `저금리 정책`을 금리가 올라가는 현 시점에서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좀더 유연해져 금리상승기조를 수용할 것인지도 모르겠다.
달러/원 환율이 급락해 세자리수로 접어들었지만 그는 "환율은 기본적으로 시장결정에 맡기겠다"며 "불안심리나 투기에 따른 급등락이 있을 경우에는 정책수단과 한국은행 등을 통해 스무딩 오퍼레이션 수준의 개입을 할 것"이라는 원론만 내세웠다. 현재 외환시장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그 인식을 알 길이 없다.
이런 모든 것들을 그는 `색깔이 없다`는 말로 당분간 피하려는 것같다.-18일 그는 자신의 색깔을 합리적 시장주의자라고 했지만 이 역시 무채색이 아닌가- 일견 신중한 접근이라는 점에서 아주 나쁘다고도 할 순 없다. 그렇지만 자신의 철학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시장은 장기 전망을 내놓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문제는 시장이다. 시장은 그것 역시 평가를 해야한다. 김좌진 장군의 `그 무엇`같은 것도 아니고, 김구 선생의 그 무엇도 아니다. 시장은 한 부총리의 `무색깔론`마저도 평가해야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시장의 평가자는 한덕수 부총리에 아예 무관심이다. 그가 17일 증권선물거래소를 방문, 추가적인 벤처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했지만 시장은 반짝하고 말았다. 또 박승 한은총재와 오찬을 하면서 환율 방어에 협조하기로 했다고 했지만 별무 반응이다.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 한 부총리 탓이라고 하지도 않고, 한 부총리가 잘하고 있다고도 하지 않는다. 외환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시장을 모르고, 시장도 그를 모르니 생긴 일이다.
이런 상황이 경제 회복기조에서 빚어지고 있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유가, 환율 등 일부 요인의 변동성이 증폭되고 있는 우려를 감안하면 이같은 시장과 경제부총리간 `괴리`는 좋은 현상이 아닌듯하다.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두는 것이 정책 추진력에도 보탬이 될 터이다.
한 부총리는 하루빨리 자기 색깔을 내놓고 시장의 평가를 기다려야한다. 평가받기를 미루기 보다는 자기 색깔을 드러내 시장의 리트머스 시험지를 통과해야한다.
이 前부총리 뒤에서, 청와대의 命 아래에 있지 말고, 스스럼 없이 시장의 평가를 받으러 나와야 할 것이다. 또한 시장은 당연히 냉정하게 평가를 내려야 한다. 시대의미적 평가조차 넣지말고 다만 냉정하게. 그렇게 시장과 한 부총리는 첫인사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