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채권시장 어떻게 바꿀까

by강종구 기자
2005.11.23 14:59:02

[이데일리 강종구기자] 기업에 장기자금을 제공하고 금융시장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채권시장 활성화 방안의 밑그림을 23일 공개했다. 극도로 위축돼 있는 회사채 시장을 키워 시중자금 단기화 문제를 해결하고 동북아 금융허브 조성을 위한 인프라로 삼겠다는 취지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방안중 10년 초과 국채발행이나 10년 국채선물 상장 등은 이미 공개됐거나 추진되고 있다. 또 대형 딜러기관 육성을 통해 채권 유통시장을 브로커 중심에서 딜러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도 논의가 상당부분 진척돼 있다.

정부는 이밖에 국채선물 결제방식의 전환, 합성부채담보부증권(CDO) 발행 허용, 신용평가제도 개선과 각종 투자자보호 장치 도입 등 새로운 대책을 선보였다.



이미 시장에 널리 알려진 10년물 신규 상장 추진외에 그동안 논란의 대상이던 현물결제 방식으로의 전환이 신중히 검토될 예정이다. 국채선물시장이 투기세력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기존의 현금결제 방식을 현물결제로 바꾸지 않는 한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행 국채선물 거래가 현금결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은 국채선물 도입되던 지난 99년 9월 국채시장이 그리 크지 않아 유동성이 부족했기 때문. 이로 인해 채권의 실물을 인수도 하는 대신에 최종거래일의 현물(채권) 가격과 전날 국채선물의 정산가격과의 차액을 주고 받는 현금결제 방식이 불가피했다.

국채선물로 1계약(현물로 1억원 규모)을 거래할 경우 증거금으로 180만원만 있으면 돼 무려 55.6배의 레버리지가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현물이 필요한 헤지거래나 차익거래보다 현물과는 전혀 무관한 투기적 선물거래가 기승을 부리며 시장이 자주 혼란에 빠지는 부작용이 속출했다. 특히 현물시장 참여가 거의 없는 외국인들이 선물을 통해 국내 채권시장을 흔드는 소위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이 만연했다.

따라서 현물과 선물간 연계거래나 선물의 고유기능인 헤지 강화를 위해서는 결제방식을 실물 인수도가 필요한 현물결제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호주나 싱가포르 등은 우리와 같은 현금결제 방식이지만 미국, 영국, 일본 등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현물결제를 채택하고 있다.

현물결제로 바꿀 경우 투기세력의 참여가 위축되면서 거래가 크게 줄어드는 등 선물시장의 가격형성 기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정부는 장기적으로 헤지기능 활성화로 선물거래가 오히려 증가할 것이며 국채현물 시장에서의 외국인 투자도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선물시장이 과도하게 위축되는 부작용을 막기위해 과도기적으로 매도자가 결제방식을 선택하는 방안이 검토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채권시장 활성화 방안의 핵심 목표중 하나는 BB등급 이하의 투기등급 기업들도 쉽게 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하고 투자자들도 안심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이를 통해 은행대출위주의 기업 자금줄을 채권시장으로 돌려 자금흐름을 장기화하고 내년말부터 시행될 신BIS협약(바젤2)에도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합성부채담보부증권(CDO)발행 허용을 통한 시장원리에 의한 신용보강 강화 방안이다. 금융기관 등이 자산유동화회사를 설립해 투기등급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해서 유동화증권을 발행하거나 은행들이 고위험 대출자산을 담보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그동안은 중소 벤처기업들이 채권을 발행할 때 신용보증이나 기술신용보증 등 공적부문의 신용보강을 이용했지만 이로 인해 시장의 기능은 오히려 약화되고 프라이머리CBO 등으로 기술신용보증의 경우 1조원의 손실이 예상되는 등 정부의 재정부담을 키웠다.

합성CDO발행이 허용되면 은행 등 금융기관은 대출채권이나 회사채의 신용위험을 따로 떼서 매도함으로써 위험자산을 줄일 수 있다. 신BIS협약을 앞두고 있는 금융기관으로서는 자기자본비율을 떨어뜨릴 수 있어 매력적인 상품. BIS비율이 개선되고 신용위험에 대한 헤지가 가능해 지면 채권매입이나 대출확대를 통한 기업의 자금조달도 활성화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일반 회사채 보증과는 달리 A등급 이상의 회사채에 대해 원리금의 적기지급 보증만을 전담하는 단종보험업 도입도 추진된다.



기업어음(CP_) 정보의 취합과 공개를 증권업협회로 바꾸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중 하나다. CP발행시 인수와 유통정보를 증권업협회에 집중시켜 시장에 공개하고 이를 통해 투자자가 기업의 유동성 위험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8월부터 은행연합회를 통해 각 권역별로 CP 거래정보를 취합해 올해 8월부터 공유하도록 했으나 활용도가 낮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공유대상기관이 자신의 CP거래정보 제공자인 증권 은행 종금사로 한정되는데다 공유정보도 발행회사, 만기별 잔액, 신용등급 등으로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CP정보 공개 확대가 되면 지난 2003년 카드사태처럼 과도한 CP발행으로 인한 금융불안을 사전에 예방하고 장기 시설자금을 CP발행을 통해 조달하는 기업의 관행을 회사채 발행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투기등급 채권에 대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부도채권의 회수율 정보를 각 금융기관들로부터 집계해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예를 들어 은행연합회가 은행, 투신사 등 투자기관, 자산관리공사, 정리금융공사 등 부실채권인수 공공기관, 법원 파산부 등으로부터 부도채권 회수 관련 정보를 취합하는 것.

이 경우 산업별 또는 신용등급별로 부도와 회수 가능성을 감안한 기대수익률(금리)가 형성돼 투자등급 채권의 발행이나 인수의 촉진이 가능하리란 기대다.



투자자 보호의 일환으로 `사채관리회사`의 도입이 추진된다. 미국의 채무수탁자나 일본의 사채관리회사와 마찬가지로 수탁만 전담으로 하는 제도다.

정부는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인수한 증권사가 수탁기능을 겸하고 있어 투자자를 위해 회사채 발행기업을 감시해야 할 수탁회사의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채를 인수한 후 이를 최종 투자자에게 되팔아야 하는 증권사로서는 투자자에게 해당 채권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킬 유인이 있기 때문이다.

현행 우리 상법상에는 인수회사(증권사)가 수탁회사를 겸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사채관리회사가 도입되면 공모발행시 사채관리회사를 의무적으로 따로 지정해야 한다.

사채관리회사는 발행회사의 재산상태나 영업상황을 조사해 원리금 상환 능력을 감시하고 채권자 명부를 관리하고 채권자집회를 소집한다. 채권자 이익에 중요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이를 보고할 의무가 있다. 또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지며 이를 위반할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신용평가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아져 스탠다드앤푸어스(S&P), 무디스 등 외국 평가사가 머지않아 국내 시장에 입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는 전문 평가인력을 30명 이상 확보해야 회사채와 기업어음, 자산유동화증권(ABS)를 모두 평가할 수 있으나 앞으로는 20명 이상이면 가능하도록 시행령이 개정된다.

또 신용평가 기준과 평가결과에 대한 공시는 물론 기업의 유동성수준에 대한 평가정보도 공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신용등급에 대한 신뢰를 높여 회사채 가격에 적절히 반영되도록 한다는 취지다.

또 자산운용사 등 채권투자자들이 자율적으로 신용평가사에 대한 평가를 하도록 유도해 신용평가사 서비스에 대한 피드백을 강화하고 신용평가사 임직원의 경우 증권거래를 제한하거나 미공개정보의 누설을 금지하는 등의 행위규범 도입을 유도할 방침이다.



국내 현물시장에서 외국인 참여율은 지난해말 기준 0.8%, 국채선물시장에서는 12% 정도다.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주식시장에 비해 매우 저조한 게 현실이다.

외국인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외국인의 국내채권 국제장외거래 금지 규정 완화가 추진된다. 지금은 모든 국내채권에 대해 외국인이 국제 장외시장에서 거래하지 못하게 돼 있지만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EB) 등 주식관련 사채가 아니면 금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의 국내채권에 대한 국제장외거래를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주식과 달리 채권은 국제 장외거래가 허용되더라도 경영권 침해 우려가 없는 단순한 채권자의 변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내 채권을 외국인이 취득하거나 처분하려면 사전에 금융감독원에 본인의 인적사항 등을 등록해야 하는 외국인 투자등록제도는 여전히 고민거리다. 채권은 주식과 달리 외국인 투자한도가 없어 등록을 받을 필요가 적지만 채권투자자금에 대한 외환유출입을 모니터링할 필요는 있기 때문이다.

또 외국인에 대한 이자소득 원천징수 면제도 국내 채권에 대한 외국인 매수기반 확대 차원에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투자자가 우회투자를 통해 조세회피에 이용할 수 있어 현실적으로 곤란하다는 문제점이 여전히 존재한다.



연기금이나 투신권 등 기관투자가들이 회사채, 특히 저등급 회사채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중 하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부가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현재 국민연금이 A등급 이상의 회사채에만 투자하는 등 대부분의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투자가능한 신용등급 하한을 자체적으로 정해놓고 있다. 그나마 투신사들이 회사채를 사주고 있지만 BB미만의 투기채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현실이다.

정부는 단순히 신용등급 하한을 정하기보다는 산업별로, 신용등급별로 다양한 손실한도를 정하는 등 정교한 위험관리기법으로 적절한 분산투자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한다는 복안이다.

소매채권시장을 활성화 해 개인 등 소액투자자들이 채권을 쉽게 사고 팔 수 있도록 할 방침도 세웠다. 지금도 국채전문딜러와는 별도로 채권전문딜러가 존소매채권시장도 사실상 유명무실한 채권전문딜러제도를 개선해 개인 등 소액투자자들이 쉽게 채권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하고 증권사가 채권을 상시 보유해야 하는 부담도 완화시켜 줄 계획도 잡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