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웬수`같은 영어

by지영한 기자
2005.06.10 16:22:48

[edaily 지영한기자] 요즘 증권사 애널리스트(Analyst)들이 영어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영어구사 능력이 애널리스트들의 재계약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까닭입니다. 애널리스트들은 대부분 1년 단위로 회사와 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증권부 지영한 기자가 영어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애널리스트들의 애환 속을 들여다봤습니다. A증권사의 시니어 애널리스트로 제법 이름이 알려진 `ㄱ씨`는 요즘 영어공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1시간씩 3번인 교습에 50만원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영어를 읽고 쓰는 데는 자신이 있지만 토익 세대가 아니다보니 듣고 말하기 능력이 턱 없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죠. 그가 만사를 제쳐두고 영어회화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회사에서 외국인 마케팅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B증권사의 시니어 애널리스트인 `ㄴ`씨의 경우엔 자신이 모시고 있던 상사를 따라 회사를 바꾸려 했습니다. 하지만 옮기려던 증권사가 워낙 `영어 프리젠테이션`을 강조하는 곳이어서 그냥 주저 앉고야 말았습니다. C증권사의 애널리스트인 `ㄷ`씨는 최근 증권사 합병 과정에서 제 3의 증권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성실성이 돋보이고 기업분석 능력도 갖췄지만 통합 상대방 애널리스트에 비해 외국어 구사능력에서 다소 밀렸던 모양입니다. 외국계 증권사를 거쳐 몇 해전 국내 대형사에서 기업을 분석하고 있는 `ㄹ`씨는 애널리스트들의 외국어 프리젠테이션 능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주장합니다. 자신의 경험상으론 외국인들이 굳이 통역을 끼고서까지 한국의 애널리스트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분석을 잘 해놓은 리포트가 있더라도 애널리스트 자신이 제대로 설명도 못하면서 어떻게 외국인 거래를 유치하느냐는 것이지요. 그는 한국주식의 절반을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못하면 그야 말로 `반쪽` 짜리 애널리스트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결과적 현상이지만 외국계증권사 서울지점들이 외국인들의 거래 수수료를 독식하고 있고, 그만큼의 국부가 유출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영어때문에 고생 한 번 안해본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국제화 개방화로 영어 구사능력은 직장인의 필수조건이 되다시피한 게 현실입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거나 소도시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으면 모를까 영어는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잘 하면 좋고 못하면 `낙오`를 피할 수 없는 잣대가 된 지 오래입니다. 증권업계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잘 나가는 애널리스트들의 처지도 마찬가지인 듯 싶습니다. 영어배우기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것을 보니 다른 직장보다 영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네요. 여의도 바닥에선 애널리스트가 펀드매니저와 더불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매력적인 직업으로 알려져있지만 남모를 애환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이 영어때문에 시달려야 하는 것은 자본시장 개방으로 외국인 손님들의 영향력이 막강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시장의 문이 열린 이후 외국인의 주식보유비중이 시가총액의 40% 안팎에 달할 정도로 외국인의 영향력이 매우 막강해졌습니다. 외국인들의 주식거래 시장도 엄청나게 커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한국계증권사 창구를 외면하고 거의 대부분의 거래를 외국계증권사의 서울지점 창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증권사들은 외국인 고객을 끌어들이기에 죽자사자 매달리고 있습니다. 외국계증권사 출신의 리서치 헤드를 영입하기 위해 거액을 지출하는가 하면, 여의도 바닥에서 외국인 장사를 잘한다고 소문난 인사들의 경우엔 회사를 옮길 때마다 많은 웃돈이 오가기도 합니다. 이와 맞물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외국인 마케팅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외국인투자가를 찾아가 자기가 쓴 리포트를 설명하고, 주식거래를 유치하라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영어 배우기 열풍이 뜨거울 수밖에요. 간혹 영어배우기를 강요당하는 풍조를 못마땅해하는 애널리스트들도 있습니다. 모증권사의 팀장급 애널리스트인 `ㅁ`씨가 대표적인 경우인데요. 그는 서울증시의 재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한국주식이 할인된 채 거래되는 진짜 이유를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주식을 사지 않고 주식을 기피한데 따른 현상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국내 투자자들의 투자심리가 크게 개선되고 있고, 다양한 간접투자상품 등으로 자금유입이 지속되고 있는 등 앞으로의 전망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증시가 내국인의 힘만으로 역사적인 박스권을 상향돌파할 날도 얼마남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외국인투자자도 중요하지만 향후 내국인에 의해 주도될 국내증시의 패러다임 변화를 고려한다면 향후 리서치 기능은 국내투자자들의 수요에 초점을 맞춰야하며, 애널리스트의 평가기준도 외국어 구사능력보다 기업분석 능력에 더욱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사가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한가요. `갑(증권사)`의 입장에서야 기왕이면 영어도 잘하고, 분석능력도 뛰어난 애널리스트를 찾게 되겠지요. 물론 둘 다 못하면 최악입니다. 한가지만 고르라면 외국어를 잘하는 경우보다는 분석능력이 뛰어난 애널리스트가 투자자들 입장에선 더 낫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영어의 중요성을 깡그리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때마침 요즘들어서는 증권사를 합병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몇몇 증권사들에 대해선 인수합병(M&A)설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규모의 경제와 틈새 전문성을 두축으로 한 증권업계의 지각변동이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증권산업의 구조조정이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지요. 이렇게 되면 증권사 직원들이 느껴야 하는 고용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 계약직인 애널리스트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애널리스트들이 떨고 있는 이유도 시쳇말로 `웬수`같은 영어가 이 구조조정의 칼이 될 수 있다는 불안심리 때문일 것입니다. `성문종합영어` 세대인 시니어급 애널리스트들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입니다. 이러다가 자신들이 구조조정의 직접적 대상이 되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때문이지요. 이렇듯 억대 연봉의 애널리스트들에게도 남모를 애환이 있습니다. 세상이 공평해서일까요. 남들이 보기에 화려한 직업을 가진 전문가들도 구조조정의 칼바람앞에서는 불안감을 어찌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도 듭니다. 겉보기에 화려하든 볼 품이 없든 상사들 눈치보랴 영어하랴 직장인들의 세상살이가 점점 고단해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