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올레? 갈래?' KT 임원들도 잔혹사

by김현아 기자
2013.11.05 11:46:02

이석채호, 잘 나갔던 임원들 물갈이
KT, 혼란 줄이려고 내주 초 이사회 개최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KT(030200) 임원들이 떨고 있다. 두 차례 압수수색 이후 줄소환되는 데다 이석채 회장이 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사의 표명과 함께 연내 임원 수를 20% 줄이겠다고 밝힌 이유에서다.

비서실장, 노무관리 등에 종사했던 임원들이 사무실 수색에 이어 검찰에 불려 가 심문을 받으면서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검찰에 투항(?)한 임원이 있다는 말도, 회사 측의 보안 감시로 기자들과 맘 편하게 통화하기 어렵다는 말도 들린다.

대다수 임원들은 검찰 수사의 향방보다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대한 위기감이 크다. KT 안팎에서 130여 명에 달하는 KT 임원들을 우스개로 ‘원래 KT’ , ‘올레(Olleh) KT’, ‘갈래 KT’로 나눠 부른다.

‘원래 KT’는 이 회장 취임 이전부터 KT에 근무한 사람, ‘올레 KT’는 이 회장이 KT를 맡은 2009년 이후 영입돼 고속 승진한 사람이다. ‘갈래 KT’는 이 회장이 밝힌 구조조정 대상인 26여 명의 임원을 의미한다.

삼삼오오 “원래 KT인데 갈래 KT가 될까 걱정”이라든지, “갈래 KT는 올레 KT여야 하는데 정반대일 수 있다”든지 하는 말을 나눈다.

KT는 국내 기업 중 가장 좋은 기업지배구조를 지녔다는 이유로 한국기업지배구조센터(CGS)로부터 2013년 우수기업상을 받았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 연속 최우수기업으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명예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회장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KT는 (오너경영의) 재벌과 다른 국민기업”이라고 자부심을 보여왔다.

그러나 형식의 투명함 만으로 외압이나 욕망을 넘어서지 못하는 걸까. KT 임원들은 2008년 남중수 전 사장이 검찰의 납품비리 수사 과정에서 옷을 벗은 뒤 외부에서 이 회장이 오고 동료나 상사 중 상당수가 자회사로 밀리거나 옷을 벗은 일을 경험했다.

남 사장 시절 기획부문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서정수 부사장은 남 사장 사표수리 이후 직무대행으로 활동하면서 이 회장 인수위를 도왔지만, 작은 인터넷 포털업체 KTH 대표이사로 물러 앉았다. 권행민 재무실장은 이석채호가 출범한 뒤 KT파워텔 대표이사로 있다 퇴직했고, KTF에서 전략기획부문장으로 했던 한훈 전무 역시 KT네트웍스로 자리를 옮겼다. 차기 회장감으로 물망에 오르는 최두환 전 SD 부문장, 이상훈 전 G&E 부문장, 김영환 전 KT네트웍스 대표 등도 밀리기는 마찬가지다.



이 회장 취임 이후 ‘원래 KT’ 임원 중 주요 보직에 있는 임원은 표현명 사장(T&C 부문장) 정도다. 핵심 보직은 ‘올레 KT’인 영국 통신회사 BT 출신의 김일영 코퍼레이트센터장과 김홍진 G&E부문장이 차지했다. 여기에 정치권 인맥을 타고 온 낙하산 임원까지 합치면 지난 5년 동안 KT 임원 유전자는 상당히 달라졌다는 평가다.

이번 역시 차기 회장이 누가 되느냐에 임원들의 희비도 엇갈릴 전망이다.

KT 관계자는 “우리 회사에선 상무보까지는 문제없지만 상무가 된 다음부터는 국회의원 줄 하나는 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차라리 오너 한 명에게 충성하는 재벌회사가 낫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KT 이사회는 임원 수 20% 연내 감축 등을 둘러싼 회사 내 혼란을 줄이기 위해 다음 주 월요일이나 화요일 이사회를 열고, 이석채 회장 퇴임일을 포함한 차기 회장 선임 일정과 절차를 논의하기로 했다. KT 임원들이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 실적을 높이는데만 관심을 갖게 할 대안은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