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총살당하고 창 없는 방 갇혀"…하마스에 잡혔던 인질의 50일
by김겨레 기자
2023.12.08 11:44:16
로이터, 하마스에 붙잡혔다 풀려난 태국 인질 인터뷰
지하 가로·세로 1.5m 방에 갇혀 구타 당해
하루 두 번 빵 지급…"가족 생각하며 버텨"
가자지구 억류된 인질 여전히 140명 달해
[이데일리 김겨레 기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50일 이상 억류됐다가 풀려난 인질이 동료의 총살을 목격하고 창문 없는 방에 갇혀 구타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에 억류했던 인질을 적십자에 인도하고 있다.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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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통신은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접경 지역의 한 농장에서 일하다가 하마스에 인질로 붙잡혔던 28세의 태국 국적 노동자 아누차 앙카에우를 인터뷰한 뒤 억류 생활의 참상을 보도했다.
아누차에 따르면 그는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의 한 농장에서 갑작스러운 로켓 공격을 받았으며, 이를 피해 숨어있다가 하마스 무장 세력을 맞닥뜨렸다. 아누차는 무장대원 소매의 표시를 보고 이들이 하마스임을 알아차렸다. 아누차의 동료 가운데 한 명은 그 자리에서 하마스의 총에 맞아 사망했고, 아누차와 그의 동료 총 네 명은 30분 동안 트럭에 실려 가자지구로 이동했다.
아누차와 동료들은 하마스 대원의 감시 하에 어둡고 좁은 터널을 한참 걸어갔고, 터널과 연결된 지하 방에 갇혔다. 이 방은 가로 1.5m, 세로 1.5m 크기로 창문이 없고 바닥은 모래로 이뤄져 있었으며, 천장엔 전구가 하나 매달려 있었다. 하마스는 이들에게 하루 두 번 납작한 빵과 물을 지급했다. 시간을 알 수 없었던 인질들은 빵 지급 횟수로 날짜를 가늠했다.
아누차는 하마스 대원들이 인질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구타했으며, 특히 이스라엘인 인질들이 가혹한 구타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인 인질은 채찍으로 맞고 살해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아누차는 조금이라도 덜 맞기 위해 (자신이 이스라엘인이 아니라는 의미로) “태국, 태국”을 외쳤다고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아누차는 침대가 있는 새 방으로 옮겨졌으며 식사도 견과류와 버터, 쌀이 포함되는 등 개선됐다. 아누차와 동료들은 간수가 두고 간 펜으로 체스판을 그려 간이 체스를 하거나 태국 음식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인질 생활을 버텼다.
구금 35일차 즈음 검은 옷을 입은 한 하마스 대원이 인질 억류 장소를 찾아왔다. 하마스 대원들의 정중한 태도를 보아 아누차는 그가 하마스 고위 간부일 것으로 추측했다. 며칠 뒤 아누차를 비롯한 태국인 동료 4명에게 석방 명령이 내려졌다.
석방을 명령받은 아누차는 2시간 동안 지하터널을 통과해 한 시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몇 명의 여성 이스라엘 인질들도 있었다. 이들은 11시간 뒤 적십자에 인계됐고, 지난달 25일 마침내 가자지구에서 탈출했다. 아누차는 “나는 죽을 줄 알았다”며 “풀려날 줄 몰랐는데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말 하마스와 임시 휴전 및 인질 석방에 합의했으나 이달 1일 공격을 재개했다. 7일 동안의 임시휴전 기간 하마스는 인질 105명을 석방했지만, 여전히 140명 가까이 가자지구에 억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