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FX칼럼)방향설정에 시간이 필요한 장

by이진우 기자
2002.08.02 14:54:49

[이진우 칼럼니스트] 환율의 변동성이 급작스럽게 커져 버린 상황에서 하루 10 ~ 20원의 일중 변동폭을 우습게 왔다갔다 하다보니 벌고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이 벌고 싶은 마음에, 잃고 있는 사람은 일거에 손실을 만회하고픈 마음에 다들 조바심을 낼 만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시장은 조급증에 사로잡힌 세력들을 조롱하며 느긋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시장을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건만 시장이 우리를 안쓰럽게 쳐다보는 이 아이러니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 종가 따라가면 터지는 장 일중 수급상황의 변화와 달러/엔 환율의 등락에 따라 춤을 추는 환율 따라가며 돈 벌기가 쉽지않다 보니 큰 물량 취급하지 못하는 비주류 은행권 딜러들이나 개인 투자자들은 장 막판 움직임과 Daily candle을 참조하며 이월 포지션으로 승부를 걸 때가 많다. 그러한 거래전략이 잘 맞아 들 때가 이른바 추세 따라가는 추세장(trend market)이고 종가 따라 포지션 잡으면 다음날 아침에 터지면서 시작하는 시기는 방향 없는 혼조장세 혹은 조정국면에 돌입한 장세이다. 달러 뿐만 아니라 최근 국내 모든 금융시장의 움직임이 장 막판 움직임 따라가는 베팅에 대해 외면하고 있다. 온통 투기적 세력들로 우글거리는 주식시장이나 국채선물 시장은 더욱 그 정도가 심하다. 주가지수의 등락에 완전히 반대되는 움직임을 보이며 그 자체로서의 시장 존엄성과 정체성(?)을 이미 포기해 버린 국채선물의 경우 밤 사이 뉴욕증시와 미 국채시장의 동향을 그대로 따라가며 갭 업과 갭 다운을 거듭하고 있고 주가지수의 장 막판 움직임에 따라 일중 상승폭이나 하락폭을 다 까먹는다 싶다가도 다음 날이면 전일 막판 급락이나 급등과 반대되는 갭 업, 갭 다운을 다시 시도한다. 세계 최고의 시장규모를 자랑하는 주가지수 옵션시장에서는 향후 장세를 낙관적으로 보는 세력들의 콜 매수와 비관적으로 보는 세력들의 풋 매수가 시도 때도 없이 쇄도하며 프리미엄만 올려놓자 외국인이나 기관들 같이 시장을 자신들의 힘으로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는 큰손들은 그 비싼 프리미엄 매일 챙기고 증시에 급등도 급락도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변동성 낮은 시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다우존스 지수가 사상 세 번째의 급등률을 기록해도 이월 콜 옵션에 트리플 정도나 허용하고 개장 초 콜 옵션 매수세력은 장 중 씨를 말려버리는 등 큰손들의 “가두리 양식장 만들어 가기”는 가히 위력적이다. 최근 들어 “숏”으로 광분할 시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롱”으로 큰 재미를 보는 것도 아닌 외환시장에서도 거래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달러/엔 환율만 잘 맞추면 되는 시절인가 싶었더니 1016원에서 984원까지도 금새 내려앉는 엔/원 환율이 말해 주듯 장 끝나고 나면 어떨 때는 “수급장세”, 어떨 때는 “글로벌 달러가치 따라가는 장세”라고 얘기들 한다. 거기에다 당국의 개입이라도 없으면 걸핏하면 노 비드(No bid), 노 오퍼(No offer) 상황이 전개되니 달러 값이라는 환율도 성수기 피서지의 돗자리 값이나 폐점을 앞둔 할인 마트의 생선 값처럼 부르는 게 값이 되어 버렸다. ◆ 지금 모두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첫째, 최근까지 석 달 넘게 이어져 온 뉴욕증시와 달러화의 폭락세가 바닥을 찍고 반등세로 확실히 돌아선 것인지 추가급락을 앞두고 잠깐 기술적 반등을 거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시장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뉴욕증시의 회복세에 대해 기대를 갖는 세력들은 악화될 것으로 충분히 예견된 2/4분기 경제지표에 대해 증시가 이미 앞서 반영했고 기업회계분식이라는 악재도 이제 계속 시장을 압박하기에는 식상한 재료이며 어차피 주가가 선행지수라고 본다면 향후 더 나빠지기보다는 좋아질(부시 행정부도 그렇게 주장하고 그린스펀 FRB 의장도 낙관적인 전망에 무게를 더 두고있다) 미국 경제를 선반영하며 그 동안의 낙폭을 만회하는 길 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눈 앞에 드러나는 경제지표의 부진에서 향후 미국 경기의 침체가 당연시 되고 턱없이 부풀려진 미국 기업들의 주가는 아직도 적정주가에 이르려면 거품이 더 빠져야 한다는 주장을 철회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소(Bull)와 곰(Bear)의 팽팽한 접전이 결말을 보기에는 시간이 다소 필요한 상황이다. 기술적으로 얘기하자면 이미 크게 꺾여버린 약세장(Bearish market)에서 손실을 조금만 줄이면, 아니면 본전 근처라도 되면 보유 주식을 처분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세력들의 악성매물 내지는 대기매물을 소화하면서 차트상의 중장기 이동평균선의 기울기가 수평에서 상향으로 전환되기까지의 “세월”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주식이나 채권이야 늘 그래왔듯이(?) 아무 생각없이(?) 미국시장 좇아가면 될 것 같은데 환율은 단순히 뉴욕증시의 오르내림에 따라 방향을 정하기에는 다소 미진한 구석이 있는 듯 하여 고민이 더해진다. 최근 뉴욕증시의 급반등세가 있기 이전에 달러화의 반등이 먼저 이루어졌는데, 그 때 달러가치의 회복세를 설명하는 이유가 아주 재미있었다. 뉴욕증시가 무너지면서 세계 증시들이 동반침체를 보이자 미국발 금융위기가 야기하는 세계경제 전체적인 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었고 그렇다면 기댈 곳은 다시 달러라는 논리가 등장했는데, 향후 뉴욕증시의 폭락세 재개가 반드시 달러약세재개를 보장하지도 않을 뿐더러 뉴욕증시의 상승반전은 상식적으로는 달러강세와 함께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그 또한 장담할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 외환시장에서 그 동안 관심을 끌어왔던 SK 텔레콤 지분매각대금이라는 거액의 달러공급요인이 그 영향력을 상실한 이후에는 외국인들의 주식매수자금이나 주식 순매도에 따른 역송금수요 등이 제일 중요한 수급요인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어 똑 떨어지는 증시와 환율간의 공식을 수립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이따금씩 의연한 척 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그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는 달러/엔 환율이라는 변수까지 가세하면 아닌게 아니라 주가나 금리보다 환율이 제일 어려워질 수 있다. ◆ 어렵다고만 하고 물러서기에는 아쉬워서 결국 국내외 증시가 회복세를 보일 것인지 더욱 낙폭을 키울 것인지, 환율이 달러/엔의 경우 115엔 중반과 달러/원의 경우 1165원 근처를 바닥으로 반등세로 돌아설 것인지 이러다 더 꺼질 것인지에 대한 확인이 이루어지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것이 오늘 칼럼의 전하고자 하는 주 내용이지만 하나마나 한 소리만 늘어놓고 마무리 하기에는 아쉬워 사족을 붙이고자 한다. 첫째, 지금 같은 혼조장세에서 너무 힘을 뺄 필요는 없다. 확신도 안 서는 장에서 무리하게 포지션을 운용할 것도 아니고, 추세 없는 장에서 아래 위로 크게 스윙 치는 장세가 이어지는 때인 만큼 굳이 얼마라도 포지션을 들고 있어야 하루가 수월하게 넘어가는 체질이라면 손절(loss-cut) 레벨을 길게 잡을 수 있는 소규모의 포지션 운용이 적당하다. 둘째, 결국은 환율이 이런 혼조국면을 거치고 나면 어디로든지 방향을 잡을 터인데 필자라면 아래와 위 중 룸(공간)이 더 넉넉한 곳을 노리겠다. 지금 아래로는 기껏해야 1150원이다. 그러나 위로는 1250원도 가보자면 가 볼 수 있는 레벨이다. 지금은 확신 단계에까지 이르지 않아 며칠 더 보고 나서 환율 반등장으로 분위기가 굳어지면 정리해 보려 하는데, 뭔가 시장 내의 분위기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음을 강하게 느낀다. 아직은 곰과 소가 머리를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지만 조만간 어느 한 쪽이 꼬리를 감추고 내뺄 것 같은데, 필자는 황소(Bull)의 “음메~~”하는 포효소리를 들을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든다. 이건 정말 뱀에 다리를 또 갖다 붙이는 사족(蛇足)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