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銀, 亞증시 대폭락 주범…버냉키도 오판"
by정영효 기자
2008.01.25 14:25:57
佛SG, 나흘전 금융사고 눈치채…선물 포지션 먼저 처분
"FRB, SG사태 모른채 亞증시 폭락에 75bp나 금리인하"
"내주 FOMC 금리인하 여지 줄어..25bp 가능성"
[이데일리 정영효기자] `마틴 루터 킹의 날`로 미국 금융시장이 휴장한 지난 21일(월요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아시아와 유럽의 증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시아와 유럽 증시는 폭락을 거듭하며 `2008년판 블랙먼데이`가 연출되고 있었다.
결국 벤 버냉키 의장은 예정보다 1주일 앞당겨 긴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미국 증시가 아시아 및 유럽 증시의 폭락장세를 물려받을 경우 집값하락으로 고통받고 있는 미국의 가구의 부담을 늘려 경기후퇴(recession)를 야기할 것이라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22일(화요일) FRB는 뉴욕 증시 개장직전, 기준금리를 26여년 만의 가장 큰 폭인 0.75%포인트 인하했다.
그러나 대서양 건너 유럽 대륙에서는 벤 버냉키 의장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FRB의 금리인하 나흘전, 금리인하 프랑스 2위 은행인 소시에테 제네랄(SG)의 컴플라이언스부문 임원이 자사의 선물 부문 딜러 `제롬 커비엘`이 연루된 금융사기사건을 알아챈 것이다. 손실 액수만 49억유로(약 71억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금융사고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SG는 투자자들에게 상황을 발표하기 전에 관련 상품을 처분하기로 결정하고 일요일인 20일 프랑스 금융감독당국인 프랑스은행(BOF)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자칫 다른 은행들이 이같은 사실을 알고 먼저 포지션을 변경할 경우 손실 규모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은행은 관련 파생상품의 포지션을 청산한 이후에 관련 내용을 발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SG의 요청을 승인했다.
월요일인 21일 아시아에서 블랙먼데이를 일으킨 장본인은 바로 SG였다. 미국 경기후퇴 우려가 아니었다. SG는 이날 대거 포지션 청산에 나섰다. SG가 청산한 포지션은 약 250억유로. `블랙 먼데이`로 이끌기에 충분한 액수였다.
이번 주 초 전세계 금융시장의 양대 사건이었던 21일 글로벌 증시 폭락과 22일 FRB의 기습적 금리인상의 전말은 이렇게 파악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마켓워치는 FRB 관계자의 증언을 인용, FRB가 SG 사태를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글로벌 증시 폭락에 반응해 긴급 FOMC를 소집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증시 폭락의 원인을 오판한 채 기준금리를 기습적으로, 그리고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인하했다는 것이다.
21일 글로벌 증시를 폭락시킨 주요인이 미국의 경기후퇴 우려에서 `SG 사태` 쪽으로 무게추가 움직임에 따라 FRB의 0.75%포인트 금리 인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저명한 이코노미스트 배리 리톨츠는 "SG사건의 전말을 통해 FRB의 오판이 드러났다"면서 "지난 22일의 0.75%포인트 금리 인하는 FRB 역사상 가장 당혹스러운 사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도 FRB의 결정이 성급하고 지나쳤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전까지 연방기금(FF) 금리선물은 FRB가 다음주(29~30일) 금리를 0.50%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을 100%로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SG사건이 발표된 이후 가능성은 76%로 급감했다.
이 때문에 다음주 FOMC에서 FRB가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 금리선물 시장의 트레이더들은 인하 폭이 0.25%포인트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전세계 중앙은행들과 긴밀한 연락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FRB가 긴급 FOMC를 소집할 때까지도 SG사건을 알 지 못한 배경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런던의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중앙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이 FRB에 SG사건을 통보하지 않았음이 명백하다"며 "결국 FRB는 한 금융사기꾼의 행동이 유발한 SG의 물량 청산에 놀라 금리를 0.75%포인트 인하한 셈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긴급 FOMC 소집의 도화선이 됐던 21일 증시 폭락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이 존재
한다.
FT는 FRB가 SG사건을 알 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블랙먼데이`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SG가 아닌 채권 보증회사 암박의 신용등급 하락이라고 주장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세계 2위 채권보증사 암박의 신용등급을 하향한 것이 뉴욕시간으로 지난 18일(금요일) 오후 2시25분. 암박의 등급하락 소식이 전해지자 뉴욕 증시 막판 보험사 등 금융주들은 일제히 하락했다.
그러나 이미 장을 마감한 아시아와 유럽 증시는 `암박 쇼크`를 완충할 시간이 없었다. 그 충격은 주말 동안 증폭되며 21일(월요일) 아시아 증시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또한 SG가 포지션 청산에 나서기 이전에도 이미 아시아 증시는 급락세를 나타내고 있었다고 FT는 덧붙였다.
한 유럽계 투자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한 금융사기꾼의 행보가 이 모든 것을 유발했다는 가설은 진부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