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경영)(21)이승엽에게 배운다

byKDI school 기자
2006.11.29 14:12:19

이승엽의 요미우리 잔류, 협상론 관점에서 `최선의 대안(BATNA)`

▲ 박노형 교수
[이데일리] 한국의 간판 야구스타 이승엽 선수가 최근 일본은 물론 한국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파격적인 연봉으로 외국인으로는 드문 4년 장기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지난 2003년 11월 연봉 합의 도출이 어려워 미국 LA다저스 입단이 무산된 지 3년만의 엄청난 반전이다. 

요미우리는 매년 한국인 코치 1명을 초청해 경비 일체를 부담해 연수시키기로 약속했다. 이번 재계약 협상에서 이 선수가 유일하게 제시한 조건인데 아주 흥미롭다.

이 선수의 정확한 연봉과 계약금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중심으로 이 선수의 재계약 협상을 분석한다.

이 선수의 내년 순수연봉은 6억5000만엔으로 알려져 있다. 요미우리 기관지 스포츠호치에 따르면 이 선수의 연봉은 1억6000만엔에서 무려 305%나 인상됐다. 이같은 인상 규모는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고 기록이다. 최저 6억5000만엔을 기준으로 매년 연봉협상을 하게 되므로 이 선수는 앞으로 4년간 최저 26억엔을 받게 된다.

이밖에 홈런 수 및 타율 등에 따른 보너스를 합하면 내년 수입은 8억엔에 이를 전망이다. 따라서 실제로 이 선수가 요미우리에 잔류해 4년 동안 받을 수입은 1936년 일본 프로야구가 시작된 이래 그 누구도 누려보지 못한 금액이 될 것이다. 

요미우리는 실패의 위험을 줄이고자 외국인 선수와는 1~2년의 단기계약을 체결하는 관례를 깨뜨리고 이 선수와 4년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이 선수는 어떻게 이렇게 유례없이 좋은 조건으로 재계약 협상을 했을까.

이 선수의 연봉협상 기준은 요미우리의 중심 타자이자 3루수인 고쿠보 히로키의 연봉으로 알려져 있다. 고쿠보는 요미우리와의 재계약과 친정팀인 소프트뱅크 호크스로의 이적을 놓고 고민 중이었다.

요미우리는 고쿠보에게 2년간 7억엔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이 선수가 1년 계약을 원할 경우 고쿠보와 비슷한 수준인 3~4억엔 선에서 연봉이 결정될 전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쿠보가 소프트뱅크로 이적, 소프트뱅크 시절 달았던 등번호 9번을 돌려받고 4년간 12억엔과 보너스를 받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선수가 1년이 아닌 다년 계약을 할 경우 고쿠보보다는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됐다.

그런데 이 선수의 연봉이 고쿠보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인 것은 왜일까.



이 선수와 요미우리의 `최선의 대안`(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으로 설명 가능하다. 최선의 대안, 즉 BATNA는 `현재 하고 있는 협상의 결과가 이 협상을 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통해 얻을 결과보다 좋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선수의 BATNA는 좋았지만 요미우리의 BATNA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 선수는 요미우리의 잔류와 함께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었다. 요미우리 잔류가 아니더라고 자신의 염원인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 등 좋은 대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3년 전과 달리 미국에서도 이 선수의 진가가 높이 평가되고 있었다.

그러나 고쿠보가 소프트뱅크로 이적하기로 결심한 이상 요미우리는 이 선수를 붙잡을 수 밖에 없었다. 올 한해 팀내 어떤 선수보다도, 다른 팀의 어느 선수보다도 훌륭한 성적을 거둬 상종가를 친 이 선수를 중심 타자로 앉히는 것 이외에 달리 좋은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요미우리는 2002년 말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즈로 이적한 마쓰이 히데키 이후 4번다운 4번 타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기에 이 선수에 집착했다. 또 최근 몇 년간 팀 성적이 부진해 경기 평균 시청률이 한 자릿 수로 곤두박질치는 등 요미우리 팬들의 이탈이 심해지고 있다. 

요미우리 감독인 하라 다쓰노리도 이 선수의 재계약에 크게 기여했다. 구단주로부터 내년에 반드시 우승하라는 엄명을 받은 하라 감독은 이 선수가 꼭 필요했다. (고쿠보가 빠진 데 이어) 이 선수까지 빠진다면 요리우리의 우승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렇듯 요미우리와 이 선수의 협상에서 누가 봐도 요미우리의 BATNA는 좋지 않았고, 이 선수의 BATNA는 좋았다. 그 결과, 이 선수의 재계약 연봉 기준은 고쿠보가 아니라 일본 프로야구 간판스타인 세이부의 알렉스 카브레라가 됐다. 카브레라의 연봉은 6억엔이다. 4년 장기계약으로 요미우리의 시름을 크게 덜어준 이 선수에게 요미우리는 내년 순수연봉으로 6억5000만엔을 흔쾌히 약속했을 것이다.

이 선수의 요미우리 잔류는 협상론의 관점에서 BATNA가 충실하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BATNA가 좋지 않았던 요미우리도 이 선수의 잔류로 나름의 목적을 달성했다. 이 선수의 기용으로 더 좋은 성적을 올리고, 더 많은 팬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선수와 요미우리의 협상은 `윈-윈`이다. 내년에도 이 선수의 활약을 기대한다.

(wtopark@korea.ac.kr)

-現 KDI 국제정책대학원 갈등조정·협상센터 자문위원
-現 한국분쟁해결연구소 소장
-現 한국국제경제법학회 회장
-前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前 서울중앙지법 조정위원
-卒 미국 하버드 법대 법학석사 (LL.M)
-卒 영국 캠브리지대 국제법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