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2050 탄소제로' 딜레마…늦으면 수출 타격, 빠르면 고용쇼크

by최훈길 기자
2020.12.07 10:00:00

홍남기 “탄소중립에 과감한 선제대응”
탈석탄·탈석유·탈원전 본격 추진 예고
그린경제 없이는 미래경제 위기 판단
업계 난색, 증세·전기요금 부담 우려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한국경제를 그린경제로 전환하는 정부의 ‘2050 탄소중립’은 딜레마를 안고 태어난 정책이다. 저탄소사회로의 전환이 늦어질수록 그린경제 기술 패권에서 뒤처져 한국 경제의 견인차인 수출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반면 탈석유·탈석탄·탈원전으로 전환은 막대한 비용부담과 일자리 감소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전문가들은 탄소중립으로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지만 기업 등이 받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김태년 원내대표,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 실현 당정협의’에서 참석해 탄소중립에 선제적 대응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연합뉴스 제공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국회에서 ‘2050 탄소중립 당정 협의’를 열고 탄소중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기후위기 대응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미래의 사활이 걸린 과제”라며 “과감한 선제대응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27일 2050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에서 “세계는 이미 탄소중립 사회·경제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선제적 대응을 하기로 한 것은 미온적 대처를 할 경우 한국경제에 부정적 효과가 커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친환경 규제로 허들을 높이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린경제로 전환하지 않고서는 해외시장을 뚫을 수 없다는 전망에서다.

정부는 뒤처질수록 주력산업의 투자 및 글로벌 소싱(구매) 기회 제한 등 수출, 해외 자금조달, 기업 신용등급에서 악재가 될 것으로 봤다. 특히 기재부는 “유럽연합, 미국이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면 석유화학·철강 등 고탄소 집약적 국내 주력 산업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면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국가에서 유럽·미국으로 제품을 수출할 때 관세가 많이 붙게 된다.

그린경제 기술 경쟁에서 앞서나가야 미래 먹거리를 잃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이데일리 인터뷰에서 “10년 후에 미국이나 유럽이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자국에 유리한 친환경 기술표준을 정할 수 있다”며 “친환경 기술 패권을 잃지 않으려면 빨리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우려도 만만치 않다. 탈석유·탈석탄·탈원전으로 신재생을 급속도로 확대할수록 전기요금 인상이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전 비중은 석탄이 40.4%, LNG가 25.6%, 원자력이 25.9%, 신재생이 6.5%다. 발전 단가가 낮은 석탄이 급속도로 줄고 단가가 높은 신재생이 급속도로 확대되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미세먼지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경유세를 올리거나 탄소세를 도입하면 파장은 더 커진다. SUV 차량 소지자, 화물·운송업자, 자영업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탄소세를 도입하면 석유·철강업계 등 탄소 배출이 많은 업계 부담이 불가피하다. 산업구조 전환 과정에서 기존 산업 종사자들의 일자리가 감소돼 ‘고용 쇼크’가 올 우려도 크다.

기업에서는 정책의 불확실성, 과속에 우려하는 상황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 4일 홍남기 부총리 주재 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 “집단소송, 징벌적 손해배상 등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여러 법안들이 갑작스럽게 추진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다”며 “경제계에서 문제점을 호소해도 ‘기업들 잘못이 좀 있으니까 감수해야 된다’는 식의 논리를 갖고 당국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는 않을지 걱정이 참 많다”고 말했다.

결국 관건은 얼마나 속도조절을 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모색할지에 달려 있다. 임무송 금강대 공공정책학부 교수(전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는 “조세 저항이 우려되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석유, 석탄 등 각종 화석연료에 함유된 탄소량에 따라 부과하는 세금이다.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로 발생하는 탄소와 흡수되는 탄소량을 같게 해 탄소 순배출이 제로로 되는 상태로 넷-제로(Net-zero)로 불린다. 신재생을 확대하고 경유 사용을 줄이는 등 탈석탄·탈석유·탈원전 정책이다. 우리나라는 파리협정에 따라 ‘2050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연말까지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이는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2050년까지 저탄소 정책을 추진하는 로드맵이다.

[자료=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