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심 키우는 미국發 금리상승…주식시장도 발목 잡혔다
by이정훈 기자
2018.02.02 10:31:23
경기호조와 트럼프노믹스의 역풍, 인플레이션 공포
3% 넘은 30년물, 3% 향해가는 10년물…"금리 더 뛴다"
주식 발목잡기 이미 시작돼…"아직 괜찮다" 낙관론도
|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FFR·푸른색 실선)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거래되는 FFR 선물 내재변동성을 감안한 향후 기준금리 전망치(검은선) 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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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미국 채권시장이 불안해지고 있다. 30년만기 국채 금리가 8개월만에 다시 3%를 찍은데 이어 벤치마크인 10년만기 금리도 2.8%에 근접하면서 3%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같은 금리발(發) 공포심리는 주식시장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결국 금리 상승세가 언제쯤 진정될지, 주식시장에서의 저가 매수세가 어느 정도 적극 유입될지에 따라 시장 향배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미 국채시장은 2월 들어 첫 거래일인 1일(현지시간)에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날 투자자들이 1월 노동부 고용지표 발표에 대한 경계감으로 매물을 내놓으면서 10년만기 국채 금리는 근 4년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10년만기 미 국채 금리는 2.786%까지 오르며 4년여만에 최고치였다. 30년물 금리도 지난해 5월 이후 8개월만에 다시 3%대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1월에 미 국채시장은 지난 2016년 11월 이후 1년 2개월만에 최악의 한 달을 보냈다. 한 달간 채권값은 1.4%나 하락했다. 10년만기 국채 금리도 올 들어서만 이미 30bp 이상 올랐다.
이같은 시장금리 상승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일단 인플레이션 상승 전망이 힘을 얻고 있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실제 지난해 12월 미국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1.8%까지 올라갔고 이번주 공개된 12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전년동월대비 1.7%, 근원 PCE 가격지수도 1.5% 상승했다. 아직 기대에는 다소 못미치지만 완만하게나마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특히 시장내 기대 인플레이션을 보여주는 10년물 브레이크이븐 인플레이션율(BEI=10년만기 국채 명목금리와 동일만기 물가연동국채 금리간 차이)은 2.08%까지 상승하면서 지난 2014년 이후 근 4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연준 물가 목표치인 2%를 넘어섰다. 아울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프라 투자 확대가 본격화하면 인플레이션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높다.
이렇게 되자 연방준비제도(Fed)도 인플레이션 상승에 힘을 실으며 향후 기준금리 인상이 빨라질 수 있다는 힌트를 주며 시장을 불안케 했다. 연준은 지난달 3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성명서에서 “인플레이션이 올해내에 상승세를 보이며(move up) 연준 목표치인 2% 수준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작년 12월 회의까지는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적극적 표현이 없었던 만큼 인플레이션 상승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것으로 해석됐다. 그동안 올해 연준이 두 차례에 걸쳐 50bp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던 시장 전망도 어느새 세 차례 75bp 인상으로 바뀌고 있다. 심지어 일부 월가 투자은행들은 연내 네 차례 100bp 인상도 입에 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감세정책 후폭풍으로 미 재무부가 1분기중에 재정적자 충당을 위해 국채 발행물량을 늘리기로 한 것도 금리 상승에 한몫하고 있다. 특히 장기국채보다 단기국채를 더 찍기로 하면서 단기금리를 더 불안하게 하고 있다.
| 시장 기대 인플레이션을 보여주는 미국의 10년만기 브레이크이븐 인플레이션(BEI). 이는 10년만기 국채의 명목금리와 동일만기 물가연동국채(TIPS)간 금리 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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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상황이 우호적이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자 추가적인 시장금리 상승을 점치는 쪽이 늘어나고 있다.
앨버트 갤로 앨지브리스 매크로전략 대표는 “지금까지 시장금리는 점진적으로 올랐고 연준의 신중한 발언 덕에 나름 잘 통제됐다”면서도 “이제 추가적인 통화정책 정상화가 이뤄지는데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재정 부양이 계속되면서 인플레이션 상승 기대가 커지고 있다”며 추가 금리 상승을 예상했다. 앤드류 브레너 내셔널얼라이언스 채권담당 대표도 “시장금리는 더 올라갈 것”이라며 “앞으로 채권에 악영향을 미칠 이벤트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의장을 비롯한 연준 고위층에 변화가 예정돼 있고 재정 부양도 이어지고 대규모 국채 발행물량 증가도 예상돼 있지만 아직 시장금리는 이를 다 반영하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채권 구루’로 꼽히는 빌 그로스 야누스펀드 매니저도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채권시장은 분명히 30년 강세장을 접고 약세장으로 돌아섰다”고 재확인한 뒤 “다만 채권 약세장이 강력한 콜롬비아커피는 아니고 (약한) 카페인 뺀 커피 정도라 앞으로 채권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진 않을 것”이라고 점쳤다.
특히 금리가 심리적으로 중요한 지지선을 뚫었다는 점을 더 우려하고 있다. 애런 콜리 BMO캐피탈마켓 애널리스트는 “30년물 금리가 다시 3%에 들어섰다는 건 시장내에서 꽤나 의미를 가질 것”이라며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매트 프런드 칼라모스인베스트먼트 채권전략 대표는 “장기금리는 여전히 잘 통제되고 있다”며 금리가 더 올라가면 장기투자기관들이 가격 매력을 느끼며 매수에 가담할 것이라며 우려의 강도를 낮추기도 했다.
또다른 변수는 시장금리 상승이 잘 나가던 주식시장에 악재가 될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통상 시장금리가 완만하게 상승할 경우 시중자금이 채권에서 주식시장으로 이동해 주가에 호재가 될 수 있지만 금리가 빠르게 뛰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금리가 오를 경우 주식에 대한 기대수익률도 높아져 주식 투자매력을 떨어뜨리는 한편 기업들의 차입 부담을 늘려 기업 실적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또 주식의 배당 매력도 떨어질 수 있다. 채권금리에 민감한 유틸리티나 부동산 등 통상 고배당 업종들이 최근 뉴욕증시에서 고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 부동산시장 둔화로 주택경기와 민간소비가 동시에 둔화될 우려도 있다. 실제 지난주 30년만기 모기지 금리는 4.18%를 기록하며 한 주간 9bp 올랐다. 금리는 작년 3월 이후 10개월여만에 최고였다. 10만달러 대출을 상환한다면 한 달에 지불해야할 원금과 이자 부담이 5.23달러 늘어난다는 뜻이다. 한 달전 평균 금리는 3.84%였다. 15년만기 모기지 금리도 한 주새 5bp 더 올라 3.50%를 찍었다. 이에 따라 지난주 미국내 모기지 리파이낸싱(재융자) 신청건수는 2.9%나 감소했다. 모기지 리파이낸싱은 주로 미국 가계의 소비여력으로 이어진다.
이에 글로벌 투자자들은 1월중 주식 보유비중을 오히려 1.2%포인트 줄였다. 이날 로이터가 미국과 유럽, 영국, 일본에서 활동하는 50명의 펀드매니저와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51.3%에서 50.1%로 주식 편입비중을 낮추기로 했다. 케드릭 배런 제너럴리인베스트먼트 멀티에셋 대표는 “인플레이션 상승 우려가 더 커지면서 주식과 채권을 동시에 줄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그동안 ‘뒷북 정책’(behind the curve)을 펴온 연준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실제 이들은 국채 편입비중도 2%포인트 정도 낮추겠다고 답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 역시 숫자 3을 `매직 넘버`(magic number)로 보고 있다. 지난해 4분기에 2.6%에 그쳤던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초 3%를 찍거나 지난해 12월에 2.5%였던 시간당 평균임금 상승률이 전년동월대비 기준으로 3%까지 올라서거나 10년물 금리가 3%를 찍거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3000선을 찍으면 채권과 주식시장 조정이 동시에 본격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낙관론도 여전하다. 마르코 콜라노빅 JP모건 시니어 스트래티지스트는 “글로벌 경제 성장세가 양호하게 유지되는 한 증시는 나쁠 것 같지 않다”며 “아직까지는 시장금리가 주식시장 밸류에이션을 직접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10년만기 미 국채 금리가 많이 올랐다곤 하지만 여전히 지난 2013년 중반 ‘긴축 발작’(taper tantrum) 때에 비해서는 30bp나 낮은 수준이다. 금융위기 이후 최고였던 지난 2009년말의 4%에 비해서도 130bp(1.3%포인트) 이상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