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천승현 기자
2012.09.13 11:20:50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지난 2008년 에이즈환자들이 다국적제약사 로슈를 상대로 격렬한 시위를 펼쳤다. 환자들은 로슈가 개발한 새로운 치료제 ‘푸제온’의 공급을 거부하는 항의였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로슈가 본사 방침에 따라 일정 수준의 가격 이하로 제품을 공급하지 못한다고 버텼다. 건보공단 입장에선 열악한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하면 제약사가 원하는 약가를 인정해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건보공단과 제약사 간의 약가협상이 지연되면서 피해는 환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 사건 이후 보건당국이 해결책으로 꺼내 든 것이 ‘리펀드 제도’다. 리펀드 제도는 희귀필수의약품에 한해 건보공단이 제약사가 요구하는 의약품의 가격을 그대로 수용하되, 건보공단이 원하는 약가와의 차액을 돌려받는 것을 말한다.
제약사는 원하는 가격을 받을 수 있고, 차액을 돌려받은 건보공단은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꾀할 수 있는 제도다. 무엇보다 치료제가 없는 희귀질환자들에게 약물 공급이 빨라질 수 있다는 점이 이 제도의 가장 큰 매력이다.
복지부는 시범적으로 지난 3년간 리펀드제도를 운영하면서 이번에 정식 제도화를 추진했지만 불발됐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가입자 대표로 있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이들은 환자들이 비싼 가격으로 약을 복용하게 된다는 이유로 리펀드 사업을 반대, 결국 시범사업 3년 연장이라는 어정쩡한 결론이 도출됐다.
애초 리펀드제도는 치료제가 없는 일부 질환에 한해 ‘비싼 가격’을 감수하더라도 ‘신속한 약물 공급’이 우선돼야 한다는 전제로 추진됐다. 돈보다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라는 것. 그러나 적기에 약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환자들에 대한 대안이 없으면서도 반대 뜻을 고수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다. 비싼 가격을 고수하는 제약사를 탓하기도 모호하다. 오랫동안 막대한 비용을 투입, 개발한 신약에 대해 적정 가격을 받는 것은 제약사의 권리이기도 하다. 제도를 추진하는 복지부의 태도도 아쉽다. 환자를 위해 조속히 도입해야 하는 제도라면서 가입자단체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희귀질환자들은 언제 치료제가 공급이 지연될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