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채무 재조정 기정사실?..넘어야할 산 많다

by김기훈 기자
2011.04.19 11:11:50

채무재조정 요청설..국채수익률 급등
유럽 금융시스템 흔들수도

[이데일리 김기훈 기자]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1호 구제금융 신청국이라는 불명예를 쓴 그리스가 이제는 채무 재조정의 위기에까지 놓이게 됐다. 자금 조달의 유일한 통로였던 국채의 수익률이 연일 치솟으면서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됐기 때문.

시장은 그리스의 채무 재조정을 기정사실화하는 모습이지만 채무 재조정은 단순히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닌 전 유럽 금융시장을 흔들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 2009년 이후 그리스 국가 부채 추이. 올해 이후는 전망치(출처:WSJ)
가뜩이나 하루가 멀다하고 고공 행진을 벌이고 있는 그리스 국채 수익률은 지난 18일(현지시간) 그리스 현지 언론에서 나온 채무 재조정 신청설에 또 한 번 급등했다.

그리스 일간지 엘레프테로티피아는 지난 8~9일 헝가리에서 진행된 유로존(EU) 재무장관 회의에서 그리스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 측에 정부 부채 전액에 대한 상환기간을 연장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그리스 정부와 중앙은행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시장은 이를 믿지 않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그리스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장중 한때 14.56%까지 올라, 유럽 기준 국채인 독일 10년물 국채(분트)와의 수익률 격차(스프레드)가 사상 최대폭인 1132베이시스포인트(bp)까지 확대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리스가 국내총생산(GDP)의 1.5배를 웃도는 부채를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벨기에 브뤼셀 소재 싱크탱크 리-디파인의 소니 카푸어 이사도 "쉬운 해결방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며 그리스의 채무 재조정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대다수 전문가가 그리스의 채무 재조정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은 여전히 많다. 채무 재조정 시 채권단은 물론 유럽 전체 금융시스템에 미칠 여파가 만만찮기 때문.

케네스 와트렛 유로존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이 최근 그리스의 채무 재조정을 고려하고 있다"며 "가능한 방안 중 하나는 채권단이 손실을 감수하는 `헤어컷`이지만 이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헤어컷이 시행될 경우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상당수 유럽 은행들이 손실을 입으면서 각국 금융시스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그리스 국채의 20% 가량을 자국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헤어컷은 결국 그리스 은행들에 대한 구제금융이 추가 투입돼야 한다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그리스 국채 보유자들이 순순히 헤어컷에 따른 손실을 부담할지 여부도 관건이다. 그리스 국채의 3분의 1가량은 연기금과 보험사 등 비은행권이 갖고 있다. 이는 자칫 헤어컷 문제가 정치적 논란으로 갈 소지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앙드레 사피르 브뤼겔 이코노미스트는 "연기금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하다"며 "이들의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정치적 관점에서 유로존 국가들이 손실을 보지 않을 수 있지만 법적 관점에서는 손실을 보지 않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