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국헌 기자
2008.02.01 14:29:12
亞·중동 국부펀드, 경험 미숙..고급 금융인력 갖춰야
사모펀드·헤지펀드등 `아메리카 독수리` 경쟁도 걱정
美보호주의·각국 규제도 관건..투자수익률 해칠 수도
[이데일리 김국헌기자] 국부(國富)를 더 많이 쌓으려다 국부를 잃을 수도 있다?
아시아와 중동의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가 미국 기업과 금융회사를 사들이는 사례는 우리에게 두가지 형태로 쾌감을 준다. 아시아권이 부유해졌다는 자부심 또는 아시아경제의 자신감. 그리고 세계 1위 경제대국 미국의 자산을 샀다는 우쭐함이다.
이런 쾌감은 일시적 도취감에 불과하다. 국부펀드를 만든 이유가 국민에게 쾌감을 주는데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 돈인 국부펀드 자산을 더 불리는 것이 투자의 진짜 이유다. 일정 수준 이상의 투자수익률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매수 대상이 된 미국은 외국 국부펀드가 자본력을 정치적 무기로 악용할 것이라고 우려,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투자자로서는 이같은 정치 논리와 함께 시장 논리도 걱정해야 한다.
싸다고 함부로 미국 기업을 사들이기엔 국부펀드를 굴리고 있는 중국, 아시아, 중동 등 각국 투자자금이 감당해야 할 위험 또한 만만치 않다.
카타르 국영 투자펀드인 델타펀드. 지난해 여름 영국 식품유통업체 세인스버리를 190억달러에 인수하려다 11시간 만에 물러난 사건이 있었다. 미국 은행가들은 이런 카타르 국부펀드를 `아마추어`라고 낙인찍었다.
국부펀드의 자본력이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를 능가한다고 해도, 투자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덩치 큰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월가가 국부펀드를 복잡한 상품구조와 계약조건으로 얼마든지 농락할 수 있다.
월가는 투자자금을 필요로 하는 당사자이면서도 각종 `계약의 전문가`라는 점에서 금융노하우 자체가 강력한 방어무기인 셈이다. 반면 국부펀드나 아시아권 기업들은 이들의 자문이 없이는 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문성이 취약하다.
사실 월가의 토박이도 미국기업 인수로 수익을 내는 게 쉽지 않다. 사모펀드 콜버그 크라비스 로버츠(KKR)를 운영하는 `백전 노장` 헨리 크라비스도 최근 금융경색에 인력 유출까지 겹치면서 인수 기업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용카드 지불정보업체 퍼스트 데이타(인수가 290억달러)와 텍사스 최대 전력업체 TXU(440억달러) 같은 굵직굵직한 차입매수(LBO)를 끌어낸 KKR은 영국 최대 의약품 유통업체 얼라이언스 부츠의 LBO 자금(188억달러 이상으로 추정)을 마련하지 못해 한때 발을 구른 것.
따라서 `굴러들어온 돌`인 국부펀드가 미국기업 투자로 본래의 목적인 고수익률을 달성하려면, 최소한 월가의 수를 읽어낼 수 있는 금융 전문가를 갖춰야 한다. 한 마디로 수익률은 인력싸움인 셈.
비즈니스위크는 "국부펀드가 가장 먼저 갖춰야 할 것은 자본이 아니라 금융전문가"라고 지적했다. 중국도 국부펀드 중국투자공사(CIC)를 만들기 전에 차이나달러를 굴릴 인재부터 찾았다.
"월가에 피가 흥건할 때 사라"는 말처럼 현재 미국기업이 싸지만 더 떨어져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도 있다. 바닥을 정확히 예측해 유리한 조건에 미국기업을 사들이는 것은 전문가 없이는 불가능한 임무다.
미국 기업이 싸다는 것은 기관 투자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위기에 큰 돈을 벌 기회가 오는 것도 누구나 안다. 다만 월가 `타짜`들은 어디까지 떨어질지를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아메리카 독수리`인 사모펀드와 헤지펀드가 국부펀드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은 자금난 탓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미국기업들의 가치가 바닥까지 떨어질 때를 기다리며 자금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사모펀드, 헤지펀드, 벌처펀드 등에 윌버 로스 같은 투자의 고수들이 뛰어들기 시작, 경쟁이 벌어지면 주도권은 매각 당사자인 미국기업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사모펀드 칼라일은 염가 매수를 위해 에드워드 네드 켈리 前 머칸타일 뱅크쉐어즈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하고 10명 안팎의 전담팀을 꾸렸다. KKR은 이미 1년 전부터 관련 팀 인원을 10명에서 17명으로 보강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 핌코, 핌코의 라이벌 TCW 그룹, 엘링턴 매니지먼트 그룹, 마라톤 자산운용 등도 지난해 말부터 미국의 `떨이` 자산을 사들이기 위해 벌처펀드 설립에 나서, 월가에 벌처펀드 설립 바람이 불었다.
`벌처(vulture)`란 원래 대머리 독수리를 뜻하는 말이다. 파산 기업이나 자금난에 봉착한 기업을 싼 값에 인수, 비싼 값으로 되파는 자본이 마치 썩은 고기를 먹고 사는 독수리의 습성과 흡사하다는 의미에서 `벌처 펀드`라 이름 붙여진 것.
국부펀드는 이들과 경쟁해서 미국 투자를 해야하는 하는 상황이다. 자칫 잘못하면 국부펀드가 뼈를 발라놓으면 미국 펀드가 낚아채는 상황이 올수 있다. 결국 타이밍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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