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균의 Why not)건설사 죽어야 산다

by남창균 기자
2010.04.07 14:20:04

[이데일리 남창균 기자] 과자가 팔리지 않으면 과자회사는 망한다. 아파트를 지어 파는 건설사도 마찬가지다. 최근들어 주택경기가 얼어붙자 워크아웃,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건설사들이 늘고 있다.

3월초 시공능력평가 58위 성원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데 이어 이달 초에는 35위 남양건설이 법정관리 행을 택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상반기 중에 중견기업 2~3곳이 같은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지난 2~3년 동안 도덕적 해이 문제가 생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종 지원책을 내놨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전매제한 기간을 줄여주고 세금을 깎아 주는 것은 물론 미분양을 사주기도 했다.

하지만 미분양 물량은 2008년말 16만 가구에서 올해 2월말 12만가구로 4만 가구 밖에 줄지 않았다. 특히 악성으로 분류되는 준공후 미분양은 꾸준히 증가해 5만가구에 달한다. 완공된 재고 아파트만 10조~15조원(1채당 2억~3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이처럼 건설사들이 몇 년째 미분양 늪에서 허우적 대는 이유는 사업성을 따지지 않은 `묻지마 분양`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주변 시세보다 높은 고분양가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언젠가는 분양이 되겠지`, `정부가 지원책을 내놓겠지`라는 전근대적 경영판단이 원인이 된 것이다. 최근 부도를 내거나 부도 위기에 처해 있는 건설사는 대부분 지방 소재 대규모 사업장이 화근이 됐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건설사 위기가 금융권 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해 제대로 옥석을 가리지 않은 것도 위기 재발의 또 다른 원인이다. 최근 도산한 업체들은 작년 초 건설사 구조조정 때 비교적 안전하다는 B등급 판정(남양은 A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건설사가 무더기로 도산할 경우 금융권 부실로 연결돼 금융산업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권은 주먹구구식 프로젝트파이낸싱에 따른 집단 문책을 피하기 위해 적당히 덮고 넘어갔다는 혐의를 벗을 수 없다.

주택경기가 2000년대와 같은 호황국면을 맞지 않는 한 미분양으로 부도위기에 몰린 건설사를 모두 살리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건설관련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건설산업은 이제 주택 중심에서 플랜트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며 “주택부문은 건설사 스스로도 슬림화하고 특화하는 방식을 택해야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정부나 업계 모두 `죽어서 사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 이데일리 남창균 건설부동산 부장
비록 건설사가 망하더라도 아파트 계약자나 발주자는 돈 떼일 염려가 없다. 분양보증, 공사보증 등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직원과 하도급업체는 다르다. 정부의 역할은 한계기업의 생명 연장이 아니라 부실 건설사 직원의 재고용과 하도급업체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국토부 전직 고위관료는 “정부가 작년에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해 건설사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금융권이 나서서 정리를 하고 가는 게 시장논리에 맞다"고 강조했다. 곱씹어 봐야 할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