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후폭풍)④유진, 금융 성장축 포기하나
by이태호 기자
2008.09.10 14:19:21
대규모 차입인수로 이자비용 급증
"하이마트 수익 높지만, 차입금 감축여력은 제한적"
하이마트 상장과 금융사업 매각 카드가 `변수`
[이데일리 이태호기자] "경쟁력 있는 사업분야에 집중한다는 전략 아래 현재 계열회사인 유진투자증권㈜ 보유지분의 매각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난 9일 유진그룹이 유진투자증권(옛 서울증권)의 재매각 검토 사실을 공식화했다. 지난 2006년 인수계약 발표 이래 2년이 채 못돼서다. 그룹의 3대 성장축 가운데 하나였던 금융사업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다.
유진그룹이 `금융사업 강화`란 야심을 접는 방안을 검토하게 된 배경에 대해선 해석이 다양하다. 그룹 재무구조 개선의 필요성도 그 중 하나로 꼽힌다.
유진그룹에 있어 지난 2년은 `M&A와 성장`의 해였다. 대우건설과 극동건설 인수에 실패했지만, 잇따라 중소 매물들을 흡수하며 급속한 성장을 달성했다.
지난 2006년 12월 서울증권 지분 24.1%를 1621억원에 인수했고, 이듬해 2월 택배업체 로젠의 지분 57.1%를 294억원에 사들였다. 지난해 8월에는 물류업체 한국통운과 한국GW물류의 지분 73.0%와 70.0%를 각각 10억원과 41억원에 매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해 12월. 유진그룹은 사업구성과 재무구조를 통째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 하이마트를 인수했다.
유진그룹 컨소시엄이 하이마트 지분 100% 인수에 쏟아부은 자금은 무려 2조원. 지난 2년에 걸쳐 인수한 모든 M&A 투자자금의 10배에 달하는 돈이다.
투입자금 중 6000억원은 `하이마트 인수를 위한 특수목적회사(SPC)` 설립 자본금으로 들어갔다. 선종구 하이마트 대표이사의 투자분 1900억원을 포함해 계열사인 유진기업과 기초소재, 고려시멘트가 출자에 참여했다(각각 3800억원, 150억원, 150억원). 유진기업(023410) 출자액의 대부분은 외부 차입으로 조달했다.
또 나머지 1조4000억원 중 1조1000억원은 SPC의 직접 차입, 3000억원은 SPC의 전환사채(CB) 발행으로 충당했다.
결과적으로 전체 인수자금의 약 4분의 1은 그룹 계열 3사의 현금과 차입금으로, 나머지 4분의 3은 차입을 통해 인수 대상인 하이마트(지난 5월 SPC를 흡수합병)에 부담을 지운 것. 전형적인 차입인수 방식이다.
하이마트 M&A로 유진그룹 핵심 3사의 순차입금과 이자비용 부담은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 6월 말 현재 순차입금은 6862억원(기초소재와 고려시멘트는 3월 말 기준). 지난해 말 1967억원 대비 3.5배에 달한다. 상반기 이자비용은 265억원(기초소재와 고려시멘트는 1분기 비용x2)으로 지난해 전체 비용을 넘어섰다.
반면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현금창출능력(EBITDA)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수준이다. 향후 괄목할 만한 이익개선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유진기업에 대한 평가 보고서에서 "원자재 비용 인상분의 부분적인 가격 전가가 이뤄지고 있지만, 공급과잉 구조와 건설경기 침체 지속 등으로 인해 실적개선의 폭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하이마트가 그룹의 새롭고 가장 강력한 Cash Cow(수익창출원)로 등장했지만, 차입인수에 따른 재무부담을 단기간 내 극복하기는 힘들 전망이다.
한국신용평가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하이마트의 그룹 매출액기여도는 65.3%, 영업이익기여도는 80.7%에 달한다(그룹 주요 계열사 기준). 2007년 법인 매출액은 2조2943억원, 영업이익은 1196억원이다.
올 상반기 실적도 긍정적이었다. 매출은 1조1743억원으로 7.4% 늘었고, 영업이익은 605억원으로 4.7% 증가했다. 실질적인 현금창출능력을 나타내는 EBITDA(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는 상반기에만 88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자비용이다.
하이마트의 순차입금은 SPC와의 합병으로 지난 8월12일 현재 1조6876억원으로 늘어났다(한국기업평가 집계). 지난해 말 1098억원에서 15배 넘게 급증한 수치다.
회사측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하이마트가 지급한 이자비용은 약 590억원. 연간으로는 1000억원을 웃돌 전망이다.
비록 풍부한 EBITDA가 안정적으로 창출되고 있다 하더라도, 추가 설비투자(출점) 등에 부담을 줄 만한 규모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유진기업에 대한 보고서에서 "하이마트는 향후에도 연간 EBITDA 1600억원 이상을 창출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성을 견지할 것"이라며 "다만, 이자비용 부담과 점포 관련 자본적지출도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판단돼 배당여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향후 유진그룹의 재무구조를 크게 개선시킬 수 있는 대표적 변수로는 하이마트의 성공적인 상장(IPO)과 유진투자증권의 매각 두가지가 꼽힌다.
유진그룹 측은 향후 2~3년 안에 하이마트를 상장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하이마트 IPO를 통한 (유진그룹의) 재무구조 개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며 "다만 상장 시점까지의 성장성 및 자본시장의 상황에 따라 가치평가(valuation)의 변동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유진투자증권 매각 검토 발표에 대해서도 시장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다.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유진투자증권 매각은 기존의 그룹 재무구조 개선 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았던 부분으로, 매각 대금을 차입금 상환 등에 쓴다면 (신용도 상승에) 당연히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시장 지위와 수익성이 모두 뛰어난 하이마트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방향성 또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지난달 1일 마무리된 그룹 핵심 3사의 합병에 따른 영업효율성 제고와 3000억원에 달하는 자산매각 계획의 진행 상황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자산매각 작업의 경우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10일 유진그룹 관계자는 "유진기업의 자회사인 메트로PFV 매각을 비롯해 유휴부동산과 유가증권 일부를 매각, 현재 계획의 35% 정도를 실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유진그룹은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포합주식(합병법인이 합병 전에 취득한 피합병법인의 주식) 750억원 ▲메트로PFV와 유휴 공장부지, 유가증권 등 1120억원 ▲고려시멘트의 광주 본사사옥, 부동산, 증권 등 950억원 ▲기초소재의 유가증권 등 180억원 규모를 연내 매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