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인 뉴욕)뉴욕에 온 금자씨

by하정민 기자
2005.10.04 11:51:24

[뉴욕=이데일리 하정민특파원] 금자씨가 뉴욕에 왔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영화제인 뉴욕영화제가 `친절한 금자씨(Sympathy for Lady Vengence)`를 포함한 한국 영화를 대거 초청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9일까지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43회 뉴욕영화제의 공식 상영장 24편 중에는 세 한국 영화가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목요일 `친절한 금자씨`의 기자 시사회가 열린 링컨 센터 내 월터 리드 극장을 찾았다. 한국에서 이 영화를 이미 봤지만 미국인들의 반응은 어떨 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타 감독 박찬욱의 인기는 대단했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궂은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월터 리드 극장에는 빈 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기자와 평론가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복수는 나의 것`을 통해 발빠른 외국 영화광들의 주목을 받아왔던 박찬욱 감독은 지난 해 `올드보이`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세계 유명 감독 대열에 들어섰다. 미국의 대표 영화 전문 사이트인 에인트잇쿨닷컴(Ain't It Cool)의 운영자 해리 놀즈는 오래 전부터 박찬욱의 광팬임을 자처하며 그의 영화를 미국 내에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 중화권 여기자가 박 감독의 인기를 실감케 해 줬다. 기자에게 한국인이냐고 질문한 그녀는 한국인임을 확인하자 다짜고짜 "박찬욱 감독의 이름을 한자로 써달라"고 수첩을 들이댔다. 안성댁 말마따나 이런 황당한 시츄에이션이 있을 수가. 이영애도 아니고 박찬욱을...

사람들로 꽉꽉 들어찬 상영관은 매우 부산했으나 영화가 시작되자 긴장과 기다림 그리고 엄숙함으로 적막에 휩싸였다. 이어지는 영화 속 금자씨의 첫 대사. "너나 잘하세요!"



미국 관객들은 블랙 코미디의 성격을 가미한 이 영화를 한국 관객보다 훨씬 익숙하게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 관객보다 자주, 많이 웃었고 웃음의 강도도 훨씬 셌다. 금자가 목욕탕 바닥에 비누칠을 해 감옥 안에서 다른 동료들을 괴롭히던 마녀를 뒤로 넘어뜨리는 장면에서는 온 극장 안이 웃음바다로 변해 관람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비누칠 장면이야 한국 관객도 많이 웃었지만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장면도 적지 않았다. 금자가 출소 후 감방 동료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머리만 남은 조각상을 보는 장면, 금자의 교도소 동료이자 부부 강도단인 우소영이 "남편과 같이 있으면 그곳이 감옥이야? 천국이지" 하는 장면, 목사가 금자에게 다시 교회에 나오라고 하자 "저 개종했어요"라고 쏘아붙이는 장면 등에서도 포복절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한국 관객들이 가장 많이 웃었던 "너나 잘하세요" 부분에서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하긴 이영애라는 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잘 알고 있는 한국인이 아니라면 재미있게 보기 힘든 장면이기도 하다. 드라마와 광고를 통해 `대장금`과 `산소같은 여자`로 각인된 이영애가 영화 안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철저히 전복시키고 배반하고 있다는 점을 모르는 미국인들로선 웃기가 힘들었을 게다.

영화 상영 후 이어진 질문응답 시간에서 참석자들은 "왜 복수극을 3부작까지 만들었는지" "앞으로도 복수극을 계속 만들 것인지" "복수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친절한 금자씨`는 내년 2월 경 극장 개봉을 통해 미국 일반 관객들과 정식으로 만난다.

개인적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중 가장 훌륭한 영화가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개봉 결과가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구원, 속죄, 죄의식 등에 대한 금자씨의 인식이 서구 기독교적인 관념에 기초하고 있고 박 감독의 스타성이 미국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옆자리에 앉았던 한 미국인 평론가는 "번역이 매우 훌륭했다"며 "이 정도라면 일반 관객에게도 어필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친절한 금자씨`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