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종석 기자
2009.11.05 12:10:00
[이데일리 김종석 칼럼니스트]투자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었던 지난 2007년 초…… 60대 후반의 고객이 노후설계를 하겠다며 상담을 요청하였다. 당시 은행의 1년짜리 정기예금금리가 5%대에 머물고 있는 반면, 펀드 및 투자상품의 수익률은 한 해에만도 수십%에 달했던 상황이라 5억 원이라는 노후자금을 은행에 넣어두기 아까웠던 것이다. 자식들은 모두 출가하고 부인과 비교적 여유롭게 사시던 분이었지만, 상대적인 저금리가 못미덥고 아까웠던 것이다.
당시 고객이 고정적인 소득 없이 5억 원을 운용하여 노후자금으로 활용해야 함을 감안하여, 물가상승률만큼 원금이 불어나면서 6개월마다 고정적인 이자를 지급하는 물가연동 국고채, 연금상품, 원금보장형 ELS 그리고 펀드투자를 기어이 해야겠다는 의지를 절충하여 적립식펀드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8개월이 지난 2007년 10월 지나가는 어린아이까지 펀드를 이야기했던 펀드열풍을 이기지 못하고 채권이나 ELS를 모두 환매하여 주식형펀드에 올인 하겠다고 하였다.
필자 또한 고객의 완고한 주장을 이기지 못하고 2억 원만 국내외펀드에 분산해서 투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가입하자마자 미국 발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면서 원금 2억 원의 주식형펀드는 어느새 반 토막이 나 버렸다.
다행이 3억 원은 연금, 채권과 원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하여 생활비는 어렵지 않게 충당하고 있지만, 지금도 펀드잔고를 보실적마다 당시의 ‘탐욕’을 이기지 못함을 아쉬워하신다.
이처럼 누구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는 노후설계에도 자신만의 투자원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고령인 고객의 경우 ‘노(老)테크’로 접근해야 했지만, 사회적인 투자분위기에 편승하여 ‘영(Young)테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다.
젊은(Young) 사람들은 지속적인 수입이 있고 손실 보면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라는 우군이 있지만, 박씨에게는 당장 이자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던 자산이었음을 감안할 때 ‘노(老)테크’에 충실했어야 했다.
‘현재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요?’ 2008년 12월 삼성생명 라이프케어연구소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대상자중 55%가 노후준비라고 응답했다.
2005년 기준 남자의 평균연령이 75세, 여성 81세로 아직까지 건강하게 살았던 당신이라면 90세 이상 사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내가 100살까지 산다고?’라는 자문을 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직장에서 은퇴하고, 사회에서 은퇴하고 나서 몇 십 년을 소득 없이 할일없이 지내야 할 사람에게는 준비 못한 죄를 고통스럽게 복리로 치러야 하지만, 준비된 이들에게는 눈덩이처럼 큰 행복을 느끼는 시간일 것이다. 노후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그 준비는 빠를수록 여유를 가지고 충분히 준비할 수 있으므로, 가장 빠른 시점이라고 하는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식•부동산•펀드•채권•금리 등의 흐름을 읽고, 원금보장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연령•자산규모에 따라 때로는 공격적인 투자전략도 필요하다. 수익은 고통의 열매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투자에 임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비관주의자’가 되기를 당부하고 싶다.
상담을 하다 보면 노후설계를 부자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돈이 많은 사람보다 수입이 적고 적자 재정인 가정일수록 재무설계가 더욱 필요하듯이, 은퇴설계도 자녀 교육비 등 고정 지출이 많아 빠듯한 생활비로 살아가고 있는 서민, 중산층 가정에게 더욱 필요하다.
저소득층은 대부분 ‘그때 가서 어떻게 해결되겠지?’하는 심리가 강한 것으로 조사결과도 이야기 해주고 있다. 물론 당장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배부른 소리라고 푸념할지 모르지만, 노후에 나를 부양해줄 이는 자식도 형제도 아닌 바로 연금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설문에서 55%가 노후준비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변을 했지만, 그 중 노후준비를 가늠할 수 있는 연금상품의 가입자는 43%에 불과했으며,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준비가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 가구 수입이 세후 600만원 이상인 고소득층과 전문직은 연금상품 가입률이 각각 57%, 49% 인 반면, 100만원 미만인 저소득층은 15%여서 저소득층일 수록 준비에 소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은퇴 이후 생활비를 마련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29%가 새로운 근로소득 이라고 응답해 노후를 준비하기 보다는 새로운 일을 통해 생활비를 충당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노후에 일자를 얻기 힘든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 할 때 불안한 생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노후준비를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크지만, 엄연한 현실임을 인정하고 준비해야 한다.
노후자금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자녀교육비와 생활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저축하기도 빠듯한 것이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일 것이다.
각종 금융회사 등에서는 ‘노후 필요자금이 얼마다’라며 발표를 하고는 있지만, 그 금액은 노후대비를 시작하는 연령에 따라, 그리고 투자상품의 수익률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흔히 노후를 위해서는 금융자산이 10억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과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상위계층을 대상으로 설계한 금액 10억대의 노후자금 만을 강조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은 금융기관들의 협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