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크로키)`한다면 한다` 정몽구

by이훈 기자
2005.05.20 16:11:18

[edaily 이훈기자] “앞으로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기계등 주력업종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고 금융부문과 제철사업 우주항공산업 정보통신산업 등의 새로운 분야에 적극 진출할 것입니다. 특히 일반소비자에게 가격면에서 이익을 주고 현대그룹이 오는 2000년대초 필요한 5백만t의 철강원자재를 원활히 공급받기 위해서라도 제철사업을 꼭 시작할 것입니다” 지난 96년 1월 정몽구회장이 현대그룹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신년사를 겸해 밝힌 포부입니다. ‘제철사업은 반드시 이뤄내야 할 사업’이라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INI스틸이 19일 당진에 700만톤규모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겠다고 공식 발표를 했네요. 정 회장 ‘꿈’이 10년 만에 현실화하고 있군요. 일관제철소 건설이 현대가(家)의 숙원사업이긴 하지만 정작 집요하고 치밀하게 사업을 추진해 온 것은 정몽구회장이었습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지난 77년 제2제철소 진출을 추진했지만 이번 처럼 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는 롯데, 삼성 등도 제철업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결국 포철이 광양에 제2제철소를 건설하고 독점 체제를 확고히 했습니다. 고로사업 진출이 더 어려워진 것이지요. 롯데와 삼성은 자연히 신규사업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유독 현대만이 제철업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94년부터 현대는 다시 일관제철소 건설에 대한 의지를 표출했고 96년 정몽구회장이 취임하면서 ‘꼭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이때도 현대는 무차별적 공세를 펼쳤습니다. 심지어는 “국내에서 일관제철업을 하지 못하면 해외에서라도 제철소를 짓겠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제철소 설립지로 부산 가덕도, 전남 율촌, 경남 하동 등이 거론됐고 지방자치단체들도 ‘후끈’ 달아 올랐지요. 현대 제철소 문제로 한 해동안 시끄러웠지만 그 해말 정부는 결국 ‘불허’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불가’입장도 정 회장의 고로사업 진출에 대한 의지를 꺽지 못했습니다. 정 회장은 97년에도 공식석상에서 “현대그룹은 소재산업의 육성을 위해 현재 독점상태에 있는 고로제철업에 진출해 포스코와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한국 고급철강 소재의 경쟁력 제고에 힘쓸 것"이라고 말해 일관제철업에 대한 현대의 열의는 결코 식지 않았음을 대내외에 다시 한 번 알렸습니다. 고로사업 진출을 통한 일관제철업은 말 그대로 ‘유보’됐을 뿐이지 ‘포기’는 아니라는 입장을 기회 있을 때마다 분명히 했습니다. 고로사업 진출 의지는 2000년 ‘왕자의 난’을 거치며 한 동안 수면 아래로 잠복해 있는 듯 했지요. 사실 제철업 문제를 신경 쓸 입장도 아니였고요. 일관제철업 문제는 정 회장이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분리해 나와 안정적 기반을 확보한 이후급속히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 전문그룹 입장에서 보면 철강 사업 확대를 통한 수직 계열화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 진 셈이죠. 2001년 발생한 현대강관과 포스코의 ‘핫코일 전쟁’이 정 회장의 ‘철강 꿈’에 불을 지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강관업체인 현대강관을 통해 냉연사업에 진출했으나 포스코로부터 원료인 핫코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지 못하게 되자 법정 싸움을 벌이게 된 것이죠. 이 과정에서 ‘쇳물에서부터 자동차까지’라는 수직계열화의 꿈은 더욱 확고해 졌을 것 같습니다. 결국 고로사업에 대한 의지는 한보철강 인수로 이어졌고 급기야는 ‘고로건설’을 발표하게 됐네요. 막대한 투자가 예상되는 고로사업에 대한 타당성을 두고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었으나 10여년간 집요하고 치밀하게 추진해 온 정 회장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고품질의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고로신설이 필요하다”는 정 회장의 한 마디에 논란은 더 이상 무의미해 진 것이죠. 과거 현대의 일관제철사업 진출이 추진될 때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모 자동차 회사 사장에게 물어봤습니다. “현대가 고로 사업을 하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답은 이랬습니다. “자동차 회사를 하다보면 분통이 터지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안정적으로 소재를 공급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게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꼭 고로사업이 아니더라도 특수 철강 소재를 만드는 철강회사 정도는 계열사로 거느리게 되는 것이지요. 현대는 그런 욕구가 더 클 겁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렇다고 자동차회사가 고로사업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 회장께서 ‘분통 터져서’ 고로사업에 진출한 것이 아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