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사실상 핵 운반수단 포기 선언
by김관용 기자
2018.06.13 16:27:29
김정은, 북미정상회담서 트럼프에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 약속"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과 신포 SLBM 실험장 추정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사일 엔진 실험장을 폐쇄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핵무기 운반수단인 탄도미사일을 더이상 개발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실제 폐쇄 절차가 이뤄질 경우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합의문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직접 들은 내용”이라면서 “김 위원장은 이미 북한 핵미사일 엔진 실험장을 파괴하고 있다며 폐쇄를 약속했다”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은(북한) 특정한 탄도미사일 실험장과 함께 다른 많은 것들을 제거할 예정”이라면서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추후 공개할 것”이라고 재차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어떤 장소에 있는 미사일 실험장을 제거할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의 서해위성발사장 인근 ‘백두산 엔진’ 실험장과 함경남도 신포 조선소 인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장일 것으로 군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 북한이 지난 해 3월 19일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 고출력 로켓 엔진인 이른바 ‘백두산 엔진’의 지상 분출 시험을 했다고 공개한 사진이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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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엔진은 추진력이 80tf(톤포스: 80t 중량을 밀어 올리는 추력) 가량의 주 엔진에 보조엔진 4개를 묶은 형태다. 김 위원장은 이를 ‘혁명’이라고까지 칭하면서 엔진 개발을 주도한 과학자를 업어주는 등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북한이 지난 해 빠르게 미사일 사거리를 늘릴 수 있었던 것은 이 신형 백두산 엔진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는게 전문가들 분석이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2016년 9월 신형 정지위성 운반 로켓용 엔진 분출시험을 실시했다며 백두산 엔진을 첫 공개했다. 이후 6개월 만인 지난 해 3월 신형 고출력 로켓 엔진 지상 분출 시험에 성공했다며 완성을 선언했다.
북한이 백두산 엔진 개발 성공을 주장할 당시 국내 전문가들은 이를 이용한 미사일 개발에 2~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불과 2개월 만인 지난 해 5월 실제 미사일에 탑재해 시험발사까지 했다. 괌을 사정권으로 하는 ‘화성-12형’의 시험발사였다. 당시 화성-12형은 최대 고도가 2000km를 넘었다. 엔진 개발 8개월여 만에 실제 탄도미사일 발사에까지 성공한 셈이다. 북한은 백두산 엔진을 이용해 ICBM급 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어 엔진 추력을 끌어올려 개발한 ‘화성-14형’과 백두산 엔진 2개를 결합한 ‘화성-15형’의 시험발사에 모두 성공했다. 화성-14형은 미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겨냥한 탄도미사일이다. 화성-15형의 경우에는 미 본토 워싱턴까지 타격할 수 있는 ICBM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화성 계열 탄도미사일에 탑재되는 백두산엔진은 액체 연료를 사용하는데 반해, 북극성 계열 탄도미사일에 탑재되는 엔진은 고체 연료 기반이다. 북한은 이를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북한은 2016년 8월 신포 앞바다에서 SLBM인 ‘북극성-1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신포에서 SLBM 개발을 위한 미사일 엔진 지상 분사시험을 진행한 바 있다. 이를 기반으로 개발한 지상발사 탄도미사일 ‘북극성-2형’ 역시 지난 해 2월 시험발사에 성공해 김정은 위원장이 전력화를 지시한바 있다. 북한은 그동안 SLBM 3기를 탑재할 수 있는 3000톤급 잠수함을 개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3000톤급 잠수함은 원양작전이 가능한 중형잠수함이다. 은밀히 태평양으로 나가 SLBM으로 미국을 공격할 경우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해 8월 23일 1면에 게재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 시찰 사진에서 신형 SLBM으로 추정되는 ‘수중전략탄도탄 북극성-3’이라고 적힌 미사일 설명판(붉은 원)이 배경으로 등장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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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이같이 탄도미사일의 핵심인 엔진 실험장을 폐쇄하겠다는 것은 기술을 완성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더이상 ICBM 등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는 분석이다.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생산하기 위해선 엔진 실험을 해야 한다. 북한이 이 실험장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추가로 탄도미사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중단으로도 볼 수 있다. 북한은 현재 3단형 ICBM급 ‘화성-13형’과 SLBM을 의미하는 ‘수중전략탄도탄 북극성-3형’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 미사일은 아직 한 번도 시험발사하지 않았다.
한편 북한은 앞서 평앙북도 구성시 이하리에 있는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 ‘북극성 2형’의 지상 시험용 발사대를 폐기했으며, 1~6차 핵실험을 진행한 풍계리 실험장도 폭파한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