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수목금금금` 서진원 신한은행장

by이학선 기자
2011.01.17 12:41:02

"신한사태 불구 내부 흔들림 없어"
"LG카드 인수때 가장 큰 희열"
서진원 신한은행장 신년인터뷰

[이데일리 이학선 기자] 서진원 신한은행장() 인터뷰를 위해 접견실로 가던 중 행장실쪽에서 나오던 설영오 글로벌사업그룹 전무를 마주쳤다. 인터뷰 시작 5분전까지 서 행장은 신한은행의 글로벌사업전략을 보고받은 듯 했다. 접견실에 들어선 서 행장은 "조금 정신이 없다"고 했다.
 

▲ 서진원 행장은 분단위로 시간을 쪼개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사진=한대욱 기자)
경영진 내분사태를 겪은 신한은행 조직을 안정화하기 위해 취임 뒤 2주의 시간은 너무 짧은 것인지 모른다. 서 행장은 업무보고를 받고 현장을 둘러보고 대외인사를 다니느라 바빴다.
 
인터뷰 직후에도 `새해 감사인사 드리기 행사` 일정이 잡혀있었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중 소화할 수 없었던 업무는 주말에 나와 처리한다고 한다. `월화수목금금금`. 서 행장의 요즘 근황을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말 아닐까.

사실 서 행장의 선임은 깜짝인사에 가깝다. 유력후보로 거론되던 사람들을 제치고 그가 은행장으로 선임됐기 때문이다. 1951년생으로 행장 후보군 중 나이가 많고, 경영진 내분 사태와 거리가 멀었던 만큼 조직 안정 및 화합을 이끌어낼 적임자로 낙점됐다고 볼 수 있다. 

예상을 깬 인사였지만 서 행장은 조직을 빠른 속도로 안정시켰다는 평을 듣는다. 예년에 비해 지점장 등 부서장급 인사가 한달 가량 늦어지고 있음에도 연초부터 타깃고객을 상대로 한 영업캠페인이 벌어지는 등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한 임원은 "올해도 해볼만하다"며 각오를 내비쳤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지주와 은행 조직상층부의 다툼에도 불구하고 1조8000억원에 가까운 당기순이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전년도에 비해 1조원 가량 많은 금액이다. 하이닉스와 대우인터내셔널 등 출자전환주식 매각이익 영향이 컸지만 외부의 우려와 달리 내부의 흔들림은 크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 행장 스스로도 "밖에서 볼 때와 내부 분위기는 거리감이 있다"며 다행스러워했다.
 
▲ 승리를 경험해본 사람이 목표에 헌신할 수 있듯 서진원 행장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서 행장은 지난 2006년의 LG카드 인수의 희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사진=한대욱 기자)

인터뷰 초반까지 그는 상의 단추 하나를 채워놓고 있었다. 이를 본 왕태욱 홍보부장이 "행장님, 단추를 푸시죠"라며 조언을 했다. 비즈니스 관계에선 상대에 대한 예의차원에서 상의 단추를 채워두지만, 인터뷰를 할 땐 조금 다르다. 자연스럽고 적극적인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단추를 풀어둔다. 특히 사진기자가 있을 땐 더 그렇다. 아직은 언론접촉에 서툴러도 어찌보면 그만큼 때가 덜 탔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잖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서 행장이지만, 그는 신한 내에서 누구보다 큰 성취감을 맛본 사람 가운데 하나다. 승리를 경험해본 사람이 목표에 헌신할 수 있듯 서 행장도 그런 사람에 속한다. 그는 지난 2006년 신한금융지주(055550) 부사장으로 있으면서 LG카드 인수에 온힘을 다했다. 당시 신한지주의 LG카드 인수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딜이자 세계에서 1~2위 규모의 딜로 꼽히기도 했다.



"7조원짜리의 딜이었습니다. 4~5개월 동안 혼신을 다한 끝에 마지막 순간에 베팅을 했고, 뚜껑을 열어보니 70억~80억원 차이로 LG카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그 때의 희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때가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이 다른 길을 가는 분기점이었던 거죠."

LG카드 인수를 위해 가격을 써낼 때 신한지주는 주당 6만8500원, 하나지주는 6만7000원 정도를 제시했다. 인수물량을 감안했을 때 주당 100원도 차이나지 않는 가격에 신한지주가 승자가 된 것이다. 서 행장은 LG카드 인수전략의 밑그림을 짤 때가 지금도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고 했다. 이후 그는 신한생명 사장으로 옮겨 신한생명의 신계약 시장점유율(월초 보험료 기준)을 업계 9위에서 4위로 끌어올리고 취임 3년만에 당기순이익을 60% 이상 신장시키는 등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현재 서 행장 앞에는 조직의 화합과 안정, 그리고 전임자 이상의 성과를 내야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지난해 성과는 이백순 전 행장이 길을 잘 닦은 결과물이지 서 행장의 몫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대나무가 강한 것은 마디를 맺으며 성장하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도약할 일만 남았다"고 했다. `마디`를 맺은 신한은행이 서 행장이라는 구심점 하에서 어디까지 커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