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현대車는 `승자의 저주`에서 자유롭나

by박수익 기자
2010.12.30 13:30:00

업종 특성상 현금유동성 확보 필요
계열사와 시너지 검증 부족

마켓in | 이 기사는 12월 30일 11시 32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박수익 김재은 기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047040) 인수 이후 `승자의 저주`란 용어는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의 키워드가 됐다.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현대건설(000720) 딜에서도 본입찰 직전이나 MOU 체결, 우선협상자지위 박탈 등 주요 변곡점에서 빠짐없이 채권단 고위관계자들의 입을 빌려 등장했다. 저주가 우려되는 승자는 오직 현대그룹이었다.

인수자금 출처 논란이 있는 현대그룹이 인수할 경우 `승자의저주`를 피하기 어렵고, 이는 국가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채권단의 논리였다. 그렇다면 현대그룹을 밀어내고 새로운 우선협상자 지위를 노리는 현대차(005380)는 `승자의 저주` 논란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현대차의 지난 9월말 기준 현금성자산은 8조578억원, 순차입금은 마이너스 5조9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현대차가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이는 현금(NCF)은 지난 4년간(2006~2009년) 평균 2조8000억원이다. 이같은 막강한(?) 수치는 `현대차는 승자의 저주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주된 근거로 제시된다.

다만 이 근거가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치열한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현대차가 계속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전망, 그리고 현대차계열이 현대건설 인수자금으로 지출할 5조원대의 현금이 향후 경영전략상 운신의 폭을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산업 전문가인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친환경자동차 개발, 자유무역협정(FTA) 시대, 수입차시장 확대 등 다양한 변수들로 인해 향후 자동차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이를 감안할 때 원천기술 확보와 시스템 향상에 힘써야하는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부여하는 가중치는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현대차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자산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도 중요한 관점이다. 단순 잉여자금, 즉 남아도는 여윳돈으로 본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자동차업종의 특성상 보유현금은 미래담보금 성격을 무시할 수 없다. 도요타가 최근 대규모 리콜과 이에따른 시스템 개선으로 지출한 비용은 최소 5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물론 현대차가 제2의 도요타 사태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섣부른 감이 있다. 현대차가 압도적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국내시장에서는 미국과 달리 징벌적 손해배상이 없고, 반대로 미국시장에서는 현대차가 도요타만큼의 메이저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리콜이 당장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하지만 업종 특성상 현대차도 4조~5조원대의 현금유동성을 상시적으로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 애널리스트들의 일반적 의견이다. 이는 현대차가 보유한 현금성자산의 절반을 웃돈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담당 애널리스트는 "자동차회사의 보유현금은 미래를 대비하는 예비비 또는 보험 성격이 강하다"며 "5조원대에 이르는 현대건설 인수자금이 현대차에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고 말했다. 결국 현대차가 우선협상자 지위를 얻는다면, 이같은 부담을 낮추기 위해 현대건설 인수자금을 계열사와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도 관전포인트다.





건설회사가 자동차회사의 인프라구성에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두 업종간 기본적인 시너지는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도요타 역시 연매출 2조원 수준의 건설사업부를 두고 있다. 다만 현대차는 그룹내 수주를 담당하는 건설회사로 엠코를 두고 있다는 점이 관건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최근 이와관련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려면, 주주들에게 왜 현대엠코같은 건설사를 보유했음에도 또다시 대형 건설사가 필요한지를 설명해야 한다"며 "건설사 인수가 옛 모기업을 차지하는 욕구를 만족시킬 지는 모르겠지만 기업을 발전시키는 데는 잘못된 방법"이라고 꼬집었다. WSJ가 지적한 핵심은 `시너지가 있느냐`이다.

제철업(현대제철)은 자동차 수직계열화를 이룬다는 측면에서 이견이 없었지만, 건설업(현대건설)은 자동차와의 공통분모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세계 자동차업계의 최근 추세는 친환경자동차 개발을 위해 경쟁사와 손을 잡는 `적과의 동침`도 불사하고 있는데 반해 현대차는 순수혈통만 강조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시너지가 약한 건설업에 추가 진출하는 것은 문어발식 경영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회계사는 "현대차의 자금력은 상대적으로 인수비용 소요에 따른 재무적 위험을 낮출 수있지만, 그룹의 중요 의사결정이 지배주주의 명분하에 이뤄지는 문제가 계속된다면, 그룹의 주력인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제고 측면과 다른 계열사의 부담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영환 신한금융투자 크레딧 애널리스트 역시 "현대차의 자금력은 스스로 상당부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을 주름지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현대건설 인수로 인해 그룹 전체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모습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의 인수 컨설팅을 맡은 삼일회계법인이 책정한 현대건설의 적정가는 4조3000억원으로 알려진다. 5조1000억원을 써낸 현대차도 현대그룹 못지않게 비싼 가격을 제시했다는 얘기이고, 결국 적정가과 인수가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주주들과 시장에 설명할 수 있느냐가 현대차에 주어진 숙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