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SRE 산업편)⑤금호, 재무구조 악화는 명약관화?

by이태호 기자
2009.11.06 14:02:00

대우건설 처분손실로 재무비율 악화 우려
자산매각은 `순항`..대우건설 매각價 지켜봐야

[이데일리 이태호기자]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되팔기 작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금호에 대한 회사채 시장의 우려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분위기다.

`제10회 이데일리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 참여자들은 대우건설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002990)의 신용등급에 대해 여전히 높은 불만을 표시했다. 현재의 `BBB(하향검토)`보다 더 낮은 등급이 적당하다는 평가다.

이러한 평가의 바탕에는 금호가 대우건설 지분을 당장 매각하더라도, 대규모 처분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부정적 전망이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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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SRE`에서 금호산업의 신용등급에 대해 `적정성 의견이 다르다`고 밝힌 응답자는 전체 115명 중 39명(34%)으로 집계됐다. 개인당 최대 다섯 곳까지 선택 가능한 40개 기업(군) 중 한진해운(42%)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숫자다.

▲ SRE 회차별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 신용등급에 대한 이의제기 비율
금호아시아나의 신용등급이 도마에 오른 것은 지난 2007년 4월 `제5회 SRE` 이후 여섯번째다. 대우건설 인수 이후 매회 25% 이상의 표를 받으며 등급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다만 `제10회 SRE`에서 불거진 논란의 성격은 기존과 다소 달랐다. 4~9회까지는 무리한 기업인수로 유동성 위기를 자초한 금호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에는 대우건설 매각 발표 이후의 금호를 문제삼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건설(047040) 매각은 승자의 저주를 끝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비싸게 산 주식을 헐값에 처분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새롭게 부각됐다. 일각에선 자본잠식 가능성까지 언급됐다.

결국 한국기업평가와 한신정평가는 지난 6월 말 대우건설 매각 발표 직후 금호산업의 신용등급을 `하향검토` 대상에 올렸다.

그러나 시장의 호응을 얻기엔 역부족이었다. 더 빠르고 더 강력한 `액션`의 부재에 대한 시장의 아쉬움은 이번 SRE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명약관화(明若觀火) 아니겠어요?"



SRE 자문회의에 참석한 일부 크레딧애널리스트들은 금호산업의 재무구조 악화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대우건설 매각 가격이 기존 예상보다 높은 수준에서 거론되고 있지만, 처분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대우건설 인수 의사를 표시하고 있는 4곳의 후보들은 모두 주당 2만원 이상의 인수가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다수의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주당 2만원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했었다.

A 자문위원은 "과거에는 풋옵션을 받을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풋옵션 해소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며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매각가격이 2만원을 훌쩍 넘는다 하더라도 대우건설 인수 당시 재무적투자자(FI)에게 제공한 풋옵션(put option)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FI는 오는 12월15일 대우건설 주식 1억2900만주(39.6%)를 주당 3만2510원(6월 말 기준, 총 4조1960억원)에 팔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대우건설 매각가격과 FI 풋옵션 기준가격의 차액 보전 의무는 금호산업이 지고 있다. 해당 차액은 대우건설 지분 50%+1주를 되판다고 가정했을 때 매각가격이 주당 2만원~2만6000원일 경우 총 1조1000억~1조4600억원에 이른다.

단, 이러한 계산은 그룹 계열사들이 대우건설 보유 지분만큼 풋옵션을 나눠가진다는 낙관적 가정(금호산업의 경우 FI 지분 7400만주의 풋옵션만 떠안고 보유 지분 중 3380만주만 매각)에 근거하고 있다.

B 자문위원은 "자기자본이 깎여나가면서 부채비율이 올라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매각 자체도 아직 불확실하지만 대우건설을 팔더라도 금호산업 입장에서 답답한 상황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산업은 FI 풋옵션을 해소하고 재무구조 악화를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일련의 자산매각이다.
 
지난 9월16일에는 금호터미널 지분 100%를 2191억원에 매각했고, 10월8일에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 38.7% 전량을 2705억원에 팔았다. 또 11월2일 금호생명 지분 11.9%를 팔아 67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으며, 베트남의 대형 복합주상건물 지분 49%도 팔아 1500억원 상당의 현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러한 노력은 그러나 대우건설 매각 가격에 따라 충분할 수도, 부족할 수도 있다. 현재로선 감내해야 할 처분 손실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래 금호그룹은 금호생명 매각 대금 등으로 풋옵션 부담을 대폭 축소하고, 일부 풋옵션 행사시기를 늦춤으로써 충격을 최소화한다는 복안이었다.
 
최근 공시된 1298억원의 회사채 투자설명서에서도 "풋옵션 만기 3년 연장 등 상호 합의를 통한 조정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밝힘과 동시에 "금호생명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매각 가시화에 따라 풋옵션 부담을 현재의 2분의 1 수준으로 현저히 감소시킬 수 있다"며 긍정적 전망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그룹에 흘러들어온 금호생명 매각 대금은 당초 예상을 크게 밑돌았고, 풋옵션 만기 연장도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대우건설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는 이르면 이달 중순께 결정될 전망이다. 뜻밖의 건설경기 침체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휘말리면서 승자의 저주에 빠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이번 위기를 어떻게 매듭지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