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위기 이후의 FRB..`어떻게 변할 것인가`
by정영효 기자
2008.05.21 14:16:37
닷컴버블·서브프라임의 주범 `그린스펀 독트린` 폐기해야
現 FRB 정책은 인플레 유발할 수밖에 없어
FRB에 금융권 전반 감독권 부여해 `버블 선제공격` 필요
[이데일리 정영효기자] 이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변할 때다.
`전세계 경제의 행정부` FRB가 정책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21세기 들어 발생한 두 번의 전세계적인 버블 붕괴, 즉 지난 2001년 닷컴 기업의 몰락과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모두 미국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 ▲ `그린스펀 독트린`의 주창자와 계승자. 앨런 그린스펀 前 FRB 의장과 벤 버냉키 現 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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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핵심은 `그린스펀 독트린`을 폐기하라는 것이다.
그린스펀 독트린이란 중앙은행이 자산 버블을 막으려 해서는 안되고, 버블이 걷히는 시점에서 혼란을 완화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운영 방침.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 "버블이 붕괴되기 이전까지는 거품이 끼고 있는 상황임을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금리를 올려 이를 막으려는 시도는 득보다 실이 많은 전략"이라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벤 버냉키 현 FRB 의장도 그린스펀 독트린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만 두 번의 버블 붕괴를 겪으면서 FRB도 기본정책 기조를 변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3일(현지시간) FRB 내부에서 그린스펀 독트린의 폐기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까지는 폐기 가능성을 열어둔 수준.
그러나 FRB가 버블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할 경우 기존의 금리 정책보다는 감독권을 강화해 버블이 발생한 시장에 선별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FT의 분석이다. (관련기사 ☞ 버블 뒷수습만했던 FRB..`그린스펀 독트린` 버릴까)
`그린스펀 독트린을 폐기해야 할 시점`이라는 주장의 핵심은 FRB가 지난 두 차례의 버블
| ▲ 지난 10년간 발생한 양대 버블과 같은 기간 美 GDP 증가율, FRB 기준금리(출처=F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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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방조했다는 것이다.
미국 재무차관을 역임한 존 테일러 스탠포드 대학 교수는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 사태 당시 초저금리를 지나치게 오랜 기간 방치해 닷컴 버블을 유발한 FRB가 닷컴 버블 붕괴 이후 또 다시 저금리를 오래 끌어 주택시장 버블을 키우는 실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FRB의 반복된 실수를 `그린스펀 독트린`이 갖는 한계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FRB가 인플레이션 목표치 등과 같은 명확한 정책 기준을 설정하고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률 전망치에 맞추어 금리 정책을 수행하면 `저금리 논란`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FRB는 이같은 방식이 심각한 경기후퇴(recession)와 인플레 폭등과 같은 예상 밖의 위험(tail-risk)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상황에 따라 금리 정책을 결정하는 위기관리형(risk management) 접근법을 고수해 왔다.
전문가들이 FRB의 위기관리형 접근법이 인플레를 키우는 비대칭적인 구조라고 비판한다. 자산가치가 상승할 때는 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해 온 반면, 가격이 하락할 때는 금리를 급격히 낮춰 인플레를 조장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FRB는 "금리정책이 비대칭적이었던 것은 정책 상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자산가격 버블이 비대칭적으로 형성·소멸됐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1990년대 후반 IT 기업 주가와 2000년대 초반 집값 모두 오를 때는 천천히 오르다가 내릴 때는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에 금리 또한 `점진적으로 인상되다 급격히 인하되는` 모양새를 띨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버블이 FRB의 `그린스펀 독트린(위기관리형 접근법)`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긴 하지만 선제적인 버블 대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의 요구대로 FRB가 기존 정책 기조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이 `그린스펀 독트린`을 통해 제시한 두 가지 의문을 해결해야 한다고 FT는 전하고 있다.
첫째는 `자산가치가 급증할 때 이것이 버블임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버블임을 확인한다 하더라도 중앙은행은 마땅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첫번째 질문에 대한 전문가들의 답은 `굳이 버블임을 100%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통화 공급과 각종 신용시장 데이터를 토대로 선제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성공 사례가 좋은 예다.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뱅크의 라르스 스벤슨 부총재는 "자산가치가 급등해 좋지 않을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으면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중앙은행이 버블을 제거할 마땅한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문에 대해서도 해결책이 나오고 있다.
버블 제거를 위한 수단으로 금리 정책이 적절치 못하다는 데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견해를 같이 한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버블의 파괴력이 워낙 커서 이를 잡기 위해서는 금리를 대폭적으로 인상해야 하는데 이 경우 전체 경제가 황폐화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벤 버냉키 의장도 "(금리 인상을 통해 버블을 제거하느니)쇠망치로 뇌수술을 하는 게 낫다"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 ▲ 지난 5년간 가치가 급등한 3대 자산. 이 가운데 라스베가스 집값과 나스닥 지수는 이후 급락했다.(출처=WS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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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B 인사들이 보다 관심을 갖고 있는 해결책은 감독권 강화를 통한 버블 억제다.
이전까지 FRB는 시중은행에 대한 감독권 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용위기 이후 미국 정책 당국에서는 모든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권을 FRB에 귀속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최근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발표한 `금융감독 개혁을 위한 청사진(Blueprint for Regulatory Reform)`도 이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FT는 FRB가 금융권 전반에 대한 감독권을 손에 넣을 경우 금융사들에 모기지유동화증권(MBS) 비중을 축소하고 자기자본금을 확충하도록 명령하는 식의 규제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 또한 FRB에 금융권 전반에 대한 감독권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부여해 버블을 막도록하는 방안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금융사들이 규제를 피해 역외 시장으로 이탈할 가능성과 ▲감독권을 부여한 주체가 행정부인 만큼 FRB의 독립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 ▲자산가치 하락에 저항하는 정치권의 저항 등 문제는 남아있다고 FT는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