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윤진섭 기자
2005.09.30 17:30:23
[이데일리 윤진섭기자] 국정감사가 전체 일정의 3분의 1를 소화해,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국정감사는 정부에 대한 감시기능을 수행하는 국회의 중요한 업무입니다. 국회의원들의 자질이 높아지면서 정책국감으로 위상을 정립하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서도 한건주의식 폭로, 고자세 질의, 피감기관의 불성실한 답변 등 과거의 구태는 여전히 눈에 보입니다. 특히 일부 국회의원들은 `아니면 말고`식의 자료와 질의를 거듭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고 합니다. 산업부 윤진섭 기자가 전하는 국정감사 백태입니다.
지난 22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A의원은 `공기업 급료 인상률, 정부 시책 비웃나`라는 흥미로운 국감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건교부 산하공기업 임금이 최고 22% 인상돼, 정부의 인상률인 3%를 훨씬 웃돈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특히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감정원 상무이사는 급료로만 4억500만원을 받는다`며 `급료 잔치`라고 질타했습니다.
대다수 공무원이나 직장인의 임금인상이 한 자릿수를 맴돌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 공분을 살만한 대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자료는 엉터리였습니다. 기자가 A의원측에 `근거를 보여달라`고 하자 돌아온 답은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내용이었습니다.
A의원측은 `감정원 상무 3명의 월급을 합산했는데, 최종 자료를 내면서 3명이란 표기가 빠졌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잘못된 자료를 확인하고도 수정자료를 내거나 해명 자료를 내지도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정말로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A의원은 또 판교 협의양도택지에 대한 한성의 특혜를 주장하면서 `한성은 구자홍 GS건설회장의 동생인 구자철 회장이 소유하고 있다. 결국 한성이 공급받은 땅은 GS건설이 아파트사업을 전담하게 된다`는 자료를 돌렸습니다. 자료대로라면 GS건설은 판교택지를 공급받기 위해 바지회사를 내세운 부도덕한 회사가 됩니다.
그러나 구자홍 회장은 GS건설과 전혀 관련 없는 LS그룹의 회장입니다. 당연히 구자철회장이나 구자홍 회장은 GS건설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국회의원이 이번 국정감사를 어느 정도 무성의하게 준비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한나라당 B의원은 23일 한국토지공사 국감에서 `토지공사가 법을 바꿔 삼성전자에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제공했다`며 삼성전자 특혜를 제기했습니다. 삼성이 국정감사의 이슈로 부상한 상태였기 때문에 B의원의 지적은 국정감사 전날부터 공중파 뉴스를 비롯한 전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습니다.
그러나 불과 6개월 전 같은 한나라당 소속인 손학규 경기도 지사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낸 `지휘 보고`를 통해 `삼성전자로서는 토지에 대한 과도한 투자부담으로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잃게 된다`며 `땅값 인하`를 요청한 바 있습니다.
한나라당 역시 기업들의 수도권 투자를 위해 과감한 지원을 해야 한다면 공장 증설에 따른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요지의 논평을 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의원 개개인이 입법 기관으로 소속된 당이나 경기도지사와 시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부지가 임야 상태로 조성이 필요 없어 감정가대로 공급했기 때문에 다소 싸게 공급된다는 사실은 무시한 채 삼성 특혜를 제기한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 국감에선 과거에 나왔던 국감자료를 그대로 베끼거나 최근 수치만 넣어 다시 써먹은 경우도 흔합니다. 무려 여,야 8명의 의원이 제기한 토지공사의 장기 미분양 산업단지는 2002년부터 재탕, 삼탕해 버젓이 `새 버전` 인양 내놓았습니다.
의원들의 고자세와 막말도 여전했습니다. 건설교통부 국감에서 마이크가 고장나 스피커에서 굉음이 나자 모 의원은 `작년에 가스공사에서 이렇게 마이크가 고장 났다가 사장이 짤렸지`라고 말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피감기관도 옛 모습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부동산 기사 뒤에 건설회사가 있다`는 발언을 해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언론탓으로 돌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국회 국정감사가 전체 일정의 3분의 1를 소화했습니다. 이번 국감에서 초, 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책성 질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멱살잡이와 폭언 등 극한적인 감정대립이 사라지는 등 예전에 비해선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또 인력풀의 한계나 피감기관의 무성의한 자료 제출 등의 어려움 속에서도 일부 의원들은 전문적인 지식과 현장 취재의 정책 자료를 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국정감사는 의혹을 제기하고, 해명자료 받는 맛에 한다`는 과거 의원들의 구태도 전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기초 자료 확인조차 하지 않고 내놓은 한건주의식 폭로, 재탕·삼탕의 질문 자료 등등...얼핏 보기에 사소해 보이는 이런 태도나 자세들이 결국은 `국감 무용론`을 부추킨다는 점을 국회의원들은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