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태선 기자
2005.06.23 14:37:36
공동보도문 발표시간, 권 단장 "금강산도 식후경"
"섞어 앉읍시다"..곳곳에서 남북이 건배
[edaily 정태선기자·서울=공동취재단]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 사흘째인 23일 남북대표단은 공식일정에 없었던 오찬을 함께 했다.
김홍재 통일부 대변인은 "우리가 전날 오찬을 함께 하자고 제의했고, 오늘 북측이 수락함에 따라 공동오찬이 이뤄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찬장소는 회담장소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벗어날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워커힐호텔내 한식당인 명월관에서 진행됐다.
남북대표단은 전날 오후 7~8시 사이 한 차례 대표접촉을 갖고 북핵문제와 이산가족 상봉 등의 현안에 대해 의견을 조율했지만, 이날 오찬전까지는 대표접촉이 없었다.
○...워커힐호텔 명월관 이효철 지배인은 전날 12시쯤 식사를 준비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대표단은 미리 메뉴를 예약하지 않았고 도착한 후 한우 생갈비와 등심,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주문했다. 남북수석대표 등 8명의 대표단이 앉은 헤드 테이블은 별도의 방이 마련됐으며, 복분자 술이 들어갔다.
○...정동영 장관과 권호웅 단장은 승용차를 이용해 호텔숙소에서 200~300m 떨어진 명월관으로 이동했다. 정 장관은 들어가면서 "명월관 냉면이 옥류관에서 먹었던 냉면보다 맛있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냈다.
권호웅 단장은 사각형으로 이뤄진 식당 테이블에 앉으면서 "이거 남북회담 하는 식이다. 섞어서 앉자"고 말하자 정 장관도 "섞어서 앉읍시다"라며 동의했다. 권 단장은 "박차관(박병원 재경부차관), 내 옆에서 날 잘 보조해 주시오"라며 옆에 앉혔다. 뒤편에 앉은 남북지원단들 역시 전부 섞어서 앉았다.
남북대표단은 오찬에서 냉면을 소재로 대화를 이어가면서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정 장관은 "옥류관에서 얘기를 들으니까 하루에 냉면이 4000~5000 그릇이 나온다고 하던데요"라고 말하자, 권 단장은 "평양에서 춘향전 민족가극 보면 춘향이가 다리 건너가 앉지 않았나. 그게 옥류교라고 구슬 옥자에 흐를 류, 구슬이 흘러간다는 뜻인데 어버이 수령께서 옥류교 옆에 지어서 옥류관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은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박 차관은 가셔서 냉면 몇 그릇 드셨어요"라고 묻자 박병원 재경부 차관은 "저번에 평양갔을 때 사전에 나오는 음식이 많아서 정작 냉면은 두 그릇 밖에 못 먹었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권 단장은 "못해도 옥류관 냉면 세 그릇 이상 먹어야 북남 협력을 할 자격이 있다"며 웃었다. 이어 그는 "두 그릇 먹을 것은 앞으로 북남교류를 더 잘해서 세 그릇, 네 그릇, 다섯 그릇까지 먹어야 한다. 다섯 그릇까지 먹을 수 있도록 잘 하자"고 제안했다.
정 장관은 "오늘 여기서도 두 그릇 드세요"라고 화답했고 박 차관도 "그렇게 합시다"라고 힘차게 말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김만길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도 분위기를 돋구었다. 그는 "오늘은 냉면 전에 나오는 음식 조금 먹고 기본 음식인 냉면을 많이 먹자"고 말했고, 권 단장은 "평양 냉면도 가져오라"며 "평양 냉면은 평양 사람이 먹어봐야 안다"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정 장관은 북한의 지명을 딴 냉면 종류를 묻기도 했다. 정 장관은 "북한에서는 개성냉면이 있나요. 서울에서는 개성냉면집이 있는데. 강계면옥, 강서면옥 등 많이 있죠. 함흥에 가면 함흥냉면이 없다고 하던데요"고 궁금증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권 단장은 "이름마다 다 사유가 있을 것"이라며 "함흥냉면이 유명한 것은 옛날 함경도 지역이 산이 험한 지역이어서 농사를 못해 감자나 녹말을 주식으로 많이 하고, 특히 함흥 등 이북지역의 냉면은 녹말을 많이 섞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한 기자가 "남북간에 합의한 사항이 있으면 말씀해 달라"고 말하자, 권 단장은 "우리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에 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식사하고 합시다"라며 유머로 답변을 대신했고 정장관도 "명답"이라고 장단을 맞췄다.
또 남측 대표단의 한 사람이 "남측 기자들 너무 극성스럽지 않아요"라고 묻자, 북측 대표단의 한 사람은 "좋은 일인데 뭐 어떠냐"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테이블에서 "성공적인 회담을 위하여"라고 건배를 제의했고, 78명의 남북대표단은 9개의 테이블에 나눠앉아 곳곳에서 잔을 맞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