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끌어안은 정유·화학社… ‘개방형 혁신’ 속도

by김정유 기자
2020.05.31 18:41:16

에쓰오일, 최근 5개월간 스타트업 3곳 릴레이 투자
롯데케미칼, 펀드 조성해 화학 스타트업 집중 지원
GS칼텍스는 英 원유데이터 분석 스타트업에 투자
보수적이었던 정유·화학업계, 혁신 위한 시도 ‘봇물’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국내 정유·화학업체들이 최근 동종 업계 스타트업들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과거 폐쇄적이고 보수적이었던 정유·화학업계가 참신한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 끌어안기에 나서면서 ‘개방형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전적 투자는 물론이고 기술협력 활성화 등 스타트업들과의 소통을 확대하면서 ‘상생’ 이미지도 한층 부각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업체 에쓰오일(S-OIL(010950))은 지난달 인공지능(AI) 설비진단 스타트업 원프레딕트에 1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이는 지난해 1월 1차 투자(10억원)에 이은 후속투자 개념으로 원프레딕트가 에쓰오일로부터 유치한 누적 투자액은 총 20억원이다. 이 스타트업은 공장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분석해 설비 이상을 진단 또는 예측하는 솔루션 제공 업체다. 에쓰오일이 해당 스타트업에 2차 투자를 단행한 것은 최근 정유업계에 바람이 불고 있는 ‘디지털 전환’ 강화 차원이다.

에쓰오일은 지난 3월에도 폴리이미드 소재 제조 스타트업인 아이피아이테크에 10억원을 투자했다. 아이피아이테크는 주로 일본에서 수입하던 폴리이미드 소재를 국산화하는 등 잠재력을 보여준 스타트업으로, 에쓰오일은 지난해 1월 10억원에 이어 후속투자를 진행했다. 더불어 에쓰오일은 지난해 12월에도 휘어지는 배터리를 제조하는 리베스트에 1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최근 5개월 동안 스타트업 3곳에 잇따라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에쓰오일은 다음달 18일 서울창업허브와 △AI △에너지·환경 △화학·소재 △모빌리티 △기타 분야에서 스타트업과의 ‘밋업’ 행사도 추진할 계획이다. 에쓰오일이 이처럼 공개적인 스타트업 지원 및 교류 행사를 마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에쓰오일은 이번 행사에서 거론된 스타트업들의 아이디어를 검토, 향후 사업화까지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화학·에너지 계통 스타트업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참신한 외부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통해 회사가 추구하는 디지털 전환 등 다양한 혁신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011170)은 최근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전담 조직 ‘이노베이션센터’를 자사 마곡 중앙연구소에 설치하며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키우고 있다. 우선 롯데그룹내 스타트업 투자회사 롯데액셀러레이터와 함께 50억원 규모의 전용 펀드를 조성, 화학·소재·바이오 분야 스타트업 발굴에 직접 나선다. 이달 말 첫 펀드 지원대상으로 고배율 폴리프로필렌(PP) 발포 시트, 수처리용 기능성 미생물 생산기술을 지닌 스타트업 케미코와 블루뱅크를 선정한 상태다.

롯데케미칼은 이들 스타트업 지원에 이어 올해 10여개 스타트업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향후엔 펀드 규모도 200억~300억원 규모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국내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해외 유망 스타트업들과의 협력도 추진키로 했다. 서승욱 롯데케미칼 이노베이션센터장은 “국내 스타트업을 우선 타깃으로 하고 있다”며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 지원을 통해 한국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강국으로 가는 주춧돌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GS칼텍스도 스타트업들과의 협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월 원유 데이터 분석 기술을 보유한 영국 스타트업 오일엑스에 약 12억원을 투자했다. 원유 도입 과정에서 의사결정을 최적화하고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기 위해 행보다. 지난해 5월엔 전기차 생태계 구축을 위해 소프트베리, 시그넷이브이 등의 국내 스타트업들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사업기획을 다각도로 발굴하고 있다”며 “급변하는 환경 변화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업종으로 인식돼 왔던 정유·화학업계의 이 같은 행보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디지털 전환이 글로벌 정유·화학시장에서 최근 대세로 떠오른 가운데, 발빠르고 깊이있는 변화를 위해선 개방형 혁신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신속한 변화를 꾀하기 힘든 대기업 정유·화학사들에 비해 스타트업들은 다양한 시도를 과감히 펼칠 수 있어 보다 효율적인 혁신이 가능해진다. 또한 스타트업과의 ‘상생’을 통한 이미지 개선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글로벌 정유·화학시장에선 이같은 스타트업·벤처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다양한 기술협력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국내의 경우엔 아직 시작 단계”라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시장이 위축된 상황 속에서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개방형 혁신에 더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홍식(가운데) GS칼텍스 상무가 지난해 5월 스마트위례주유소에서 LG전자와 그린카, 시그넷이브이, 소프트베리와 MOU를 채결한 뒤 전기차 충전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GS칼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