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 월街 폐허 속에 뜬 `신성`

by김경인 기자
2008.09.24 14:42:57

美 금융위기에도 성장 견조
자문 업무에 집중..이머징마켓 비중 커

[이데일리 김경인기자] 일본의 노무라홀딩스는 빚 잔치에 나선 리먼브러더스의 아시아와 유럽법인을 낚아채며 월街위기의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 적은 비용에 노하우와 우수인력을 흡수하면서 덩치도 키워 투자은행(IB)계의 신성(晨星)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딜을 가능케한 거간꾼 또한 경쟁사들의 위기를 기회로 삼은 만만찮은 내공의 소유자.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에 특히 강해, 위기에 빠진 월가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싱싱한 유대계 은행 다.



월가의 내로라하는 금융사들이 줄줄이 어려움에 처한 가운데 `선택과 집중`이라는 기본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견고한 실적을 내고 있는 로스차일드가 주목을 받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현지시각) 월가의 금융위기가 블루칩 기관들에게는 절호의 성장 기회가 되고 있다며, 로스차일드가 혼돈 중에서 독보적인 성장 노선을 걷고 있다고 보도했다.


1811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로스차일드는 전 세계 40여개 이상의 오피스를 가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인수합병(M&A), 기업 구조조정 등에 대한 파이낸셜 어드바이저 영역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순식간에 `빅5`가 사라지거나 신분을 바꾸면서 월가에 곡성이 끊이지 않았지만, 로스차일드는 그 와중에도 견고한 성장세를 기록해왔다. 올해 3월까지 1년간 자문 분야에서 15억달러의 매출고를 올리며 10% 성장했다.

노무라의 리먼 법인 매입과 코메르츠방크의 드레스드너 틴수 등에 자문사로 개입하는 등, 라이벌들의 줄 초상에 오히려 일감이 늘어 바빠졌다.





월가의 비극이 무리한 세 확장, 위험한 차익거래, 지나친 탐욕에서 비롯됐다면, 로스차일드의 힘은 단연 `한 우물 파기`에서 나왔다 할 수 있다.

경쟁 IB들이 최첨단 금융기법으로 무장한 다양한 금융상품에 손대며 영역을 무한정 확장했다면, 로스차일드는 전략적 자문 업무에 집중하며 명성과 실적 모두를 지켜냈다.

로스차일드는 M&A 자문 전문인력만 900명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 중 100여명은 구조조정 관련 스페셜리스트. 현재 항공사 알리탈리아의 파산 관련 절차와 대형 출판사 옐(Yell)의 구조조정 업무에도 관여하고 있다.

라이벌들이 유동성 위기로 매각이나 구조조정에 나서는 지금이 로스차일드에게는 오히려 고객이 증가하는 호기인 셈이다.



M&A시장에서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로스차일드의 M&A시장 점유율은 14위권 밖에 되지 않는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 사업규모가 적은데다 지난해 상반기 M&A 시장을 주름잡은 대형 사모펀드들과도 교류가 적은 탓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이 월가위기에선 장점으로 기능했다. 로스차일드의 시장점유율이 높은 러시아나 인도, 중국 등 이머징마켓이 상대적으로 신용위기의 충격을 덜 받았기 때문.

인도와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의 현지인력을 기민하게 움직이며, 노무라-리먼 딜 등 최근 대형 거래에서 톡톡히 수익을 내고 있다.

나이젤 히긴스 로스차일드 IB 대표는 "현재 시장의 재앙이 갈등과 과잉으로 가득찬 투자뱅킹 모델에 펀더멘털적인 변화를 이끌 것"이라며 "이것은 자문사업에 포커스를 맞춰온 로스차일드에 절호의 기회"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로스차일드는 지속적으로 이머징 마켓과 중소기업 대상 자문사업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특히 이머징마켓에서 정부 혹은 공공기업 관련 업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