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잇단 '스쿨·학폭 미투' 피해자에게 절실한 치유와 위로의 시간
by이소현 기자
2021.02.21 15:49:48
과거 사회적 기준과 달리 높아진 현재 인권 감수성
‘스쿨·학폭 미투’ 종착점은 피해자에 대한 치유와 위로
가해자 강력 처벌은 교육효과…‘반면교사’ 계기 삼아야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최근 뒤통수를 망치 한 대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드는 사건이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8일 학생에게 교무실 청소를 시키는 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일이다. 더구나 진정인이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는 사실에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2000년대 초반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나 때’를 회상해보면 선생님이 시키는 일은 당연하게 여겼고, 부당한 일이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에 대한 틀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선진화하면서 요구하는 인권 감수성이 깊어진 덕분이다. IT 기술 발달로 의견을 표출하는 공간이 온라인으로 확장했고, 문제를 제기하고 공론화하는 게 수월해진 사회적 분위기가 화력을 더했다.
최근 학창시절 겪은 폭력에 대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파문이 확산한 이유도 맥이 맞닿아있다. ‘라떼는 말이야’ 식으로 여겨졌던 당시 관례가 문제였음을 알게 되고, 과거 쉬쉬했던 일을 다른 누군가는 맞서 싸우는 모습에 용기를 얻어 동참하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북부지법은 교내 성폭력을 공론화한 ‘스쿨(학교) 미투’의 도화선이 된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의 전직 교사 A씨에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피해자들이 문제를 세상에 알린 지 3년, 사건이 발생한지 9~10여년 만이다.
2018년 사회 각계각층에서 미투가 이어지자 용화여고 졸업생들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서 교사들의 성폭력 의혹을 폭로했다. 재학생들은 교실 창문에 포스트잇으로 ‘미투’, ‘위드유’ 글귀를 붙여 응원했다. 교사 18명이 징계를 받았지만, 15명은 학교로 복귀했다. 파면당한 A씨는 180명이 넘는 학생들로부터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당했지만, 당시 검찰은 증거가 부족하다고 불기소 처분했다. 작년 시민단체가 진정서를 낸 뒤 보완수사가 이뤄졌고, A씨는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선고 직후 피해자 중 한 명은 이를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평생 트라우마로 남은 상처를 극복하려는 용기로 시작한 ‘스쿨 미투’에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학생들과 시민단체, 언론의 사회적 연대를 바탕으로 가해자 처벌까지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가 “학교 현장이 더욱 안전하고 즐거운 곳이 되는 데에 일조했다고 믿는다”라고 밝힌 소회를 통해서 과거를 넘어 미래를 보는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자 프로배구 ‘쌍둥이 자매’인 이재영·다영 선수를 시작으로 체육계를 비롯해 일반인까지 번진 ‘학교폭력(학폭) 미투’도 우리 사회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청소년 세대에 장난으로 돌을 던져도 맞는 개구리는 죽을 수도 있다는 교육 효과는 물론 과거에 저지른 잘못이라도 미래에는 결국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인과응보’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아 학폭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인권법센터 관계자는 “(스쿨·학폭 관련 미투를) 개인의 사생활로 치부하는 것이 잘못”이라며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예방과 대처에 협조하느냐에 따라 피해자가 자신의 상처를 딛고 ‘생존자’로 거듭나는 것을 도와줄 수도, 가해자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자신의 행동 습관과 문제의 원인을 성찰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